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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2008-05-08 08:58:55최종 업데이트 : 2008-05-08 08:58:55 작성자 : 시민기자   백미영

어버이날_1
엄하셨지만 그리운 아버지
전에는 어머니의 날 이어서 으례껏 어머니의 가슴에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아버지는 뒤로 한 채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의 어머님 은혜 라는 노래를 불러드리기만 했었는데, 어버이날이 되면서부터는 아버지가 그리워지고, 왜 그때는 아버지에게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려는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어버이 날이면 더더욱 생각나는 아버지. 
그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려웠고, 엄하셨고, 아버지 밥상은 따로 차려 드려 아버지 밥상 위에 놓여있는 반찬에는 감히 손이 가지 못할만큼 높으신 분으로만 여겼었다. 

유난히도 추웠던 어느 겨울의 오후. 
그 당시에는 연탄 아궁이였기에 아랫목은 따뜻하고 절절 끓는 방이였지만, 윗목은 차가운 냉방이었고, 웃풍도 심해 이불 속에서 움츠리고 일어나길 꺼리던 시대였다.  요즘 아이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것이다. 

'휘이잉~~휘이잉~~' 칼날 같은 매서운 바람에 우는 문풍지 소리가 무서워 밤새 잠을 설치다 깜박 새벽에 잠이들면 뜨거웠던 구들장은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매캐한 연탄냄새와 아침밥 냄새가 방에 스며들면 방바닥은 다시 따뜻해지고, 석유풍로에 올려놓은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식욕을 불러 일으켜 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방 구석구석 깔린 어둠도 서서히 물러나고, 뚝배기에서 된장찌개가 온 방안에 퍼져있을때 아버지는 차가운 두 손을 비비며 들어오셨다. 
발전소에서 근무를 하셨기에 교대근무로 아침에 퇴근해 들어오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는다.

밖에 나가 놀다 들어오면 아버지는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밤을 구워 주셨다. 
나는 옆에서 더 많이 구워 먹는다고 칼집도 내지 않은 밤을 올려놓아 밤이 뻐엉~!!하고 터져 그 소리에 우리는 놀라 뒤로 자빠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밤을 주우며, 뭐라고 나무라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에 잔뜩 겁을 먹고 눈치만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는 내 어깨를 다독거리며 괜찮으냐! 놀래지 않았느냐 하시며 오히려 감싸 안아 주셨다. 아버지의 따뜻함이었다. 

내가 성년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소풍을 가셨고,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날엔 어머니의 자리만 컸었고, 아버지의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았던 그 날, 어버이날로 바뀌면서 아버지의 따스함과 그리움은 더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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