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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
2010-06-14 17:32:15최종 업데이트 : 2010-06-14 17:32:1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내장산의 품을 찾아 금요일 늦은 저녁 동수원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갔다. 
오래간만에 호남고속도로 위를 달려간다. 간간히 도로 확장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마냥 반갑다. 지금에야 쫙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그 몫을 나눠가졌지만, 예전엔 주말에 호남지방 한번 다녀오려면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기억이 떠오른다.

완연한 어둠이 찾아올 무렵 충청권을 지나면서 뿌리기 시작한 비는 내장산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오락가락했다. 촉촉이 젖은 땅을 딛고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6월, 때가 때인 만큼 내장산입구엔 서너 집의 네온사인만이 번쩍일 뿐 온통 조용하다. 난 어둠이 찾아온 이맘때가 제일 좋다. 게다가 주위엔 인적이 드물고 비까지 내려 습기를 머금은 쌀쌀한 공기가 나의 몸을 스치는 쾌감이 정말 짜릿하다.    

불현듯 2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10월 마지막 날, 내장산 단풍놀이를 찾아 친구들과 야간 완행열차에 올랐다. 새벽에 정읍에 내려 해장국을 먹은 뒤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던 일과 내장산에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에 놀랐던 기억도 떠오른다. 기억은 엊그제 같이 생생한데,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했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때 이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몇 달 전 가족모임에서 갑작스럽게 이번 여행이 결정되었다. 올 6월 어머님 생신은 좋은 호텔에서 자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으며 온가족이 1박2일 즐겁게 보내자며 의기투합했다. 장소는 어머님 집에서 가까운 내장산으로 정했다. 
그런데, 국립공원 내장산 입구에 호텔은 고사하고 모기가 '윙윙' 달려드는 모텔밖에 없었다. 시설도 모기약을 뿌리며 잠을 청해야 할 만큼 열악했다. 그나마 물이라도 시원하게 나와서 천만다행이었다. 

아침식사는 구수한 쑥 된장국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연실 30년 전통 운운하며 전국에서 이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온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다 먹을 때까지 자리도 뜨지 않고 선채로, 밥을 국에 말아 깻잎 한 장 얹어서 먹으라며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뒤 짐을 챙긴 후, 모텔을 나서면서 입구 쇼윈도에 '30년 전통과 지상파에 방송된 집'이란 글을 보았다. 

식구들에게 "정말 이집 맛 집 맞네"라는 칭찬을 하며 중심가를 빠져 나왔다. 내장산으로 오르는 길 주위를 돌아보니, 어제 저녁에 미쳐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식당들 간판에 '20년 전통, 원조, 모 방송 방영..' 똑같은 선전 글귀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생수2병과 오이 몇 개와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곧장 내장산으로 향했다.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1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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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2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2


내장산 가는 길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 외곽에 흐르는 냇물을 끼고 호젓하게 가꾸어진 '단풍 미인길'이 자연과 어우러져 정겹다. 녹음(綠陰)이 우거진 초록의 세상은 붉은 가을 단풍이 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걸어가는 길목마다 산야의 연록빛 초목에서 청정한 산소를 뿜어내어 머리를 맑게 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산안에 숨겨진 것'이 많다하여 '영은산'에서 '내장산(內藏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산의 경치를 보기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장산의 벽련암, 서래봉, 망해봉, 그리고 우화정을 굽어보는 장쾌함이 바람에 날아간 모자만큼 짜릿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나라 산들을 찾아 매번 오르지만,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날의 날씨 따라 감정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번처럼 약간 쌀쌀한 날씨에 바람과 비를 가르며 감상한 내장산의 풍광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줬다.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3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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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4
시어머님과 함께 했던 내장산 1박2일_4


긴 시간,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들은 산행을 하며, 그간 미루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정을 다졌다. 
산행 중에 힘이 부치는 기세가 보이면 잠시 쉬면서 가방 속에 싸간 오이를 꺼내어 시냇물에 씻어 나누어 먹었다. 걷다가 멋진 광경 앞에선 한 컷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머님 옆으로 슬쩍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 가파른 곳에선 손을 잡아드리기도 했다. 

어머님과 함께한 1박 2일 내장산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어 보았다. 
부모님은 살아생전 자식들 중심에 서서 늘 좌우로 기둥이 되어준다. 또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없는 이유들을 이번 기회로 모두 날려 보내고, 좀 더 자주 모여 어머님의 밥상이 되어주어야겠다. 가족의 사랑을 심은 이번 내장산의 여운은 한참 내 삶의 언저리에서 '빙빙' 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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