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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1)
신성(神聖)의 땅, 네팔에 가다(7)
2008-02-15 14:48:35최종 업데이트 : 2008-02-15 14:48:3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두 세 차례 벼르다가 드디어 랑탕 히말라야를 향한 발걸음을 떼놓는 날이다. 랑탕 히말라야는 네팔에 많은 히말라야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랑탕을 넘으면 티벳이다. 

아침 일찍 나의 길동무가 되어 함께 가주기로 한 쉐르파인 단두(Dandu)를 만나기로 했다. 나는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그를 기다렸다. 단두는 약속 시간 보다 다소 늦은 6시 30분 전날 알아둔 라짐빳 나의 집 앞을 찾아왔다. 그를 만나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겅거부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버스터미널 가는 길이 많이 밀렸다. 카트만두는 2004년 처음 찾았을 때와 비교해서 몰라보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가 네팔 사람들의 삶의 이질감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지만, 낯선 이방인의 눈길로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1)_1
겅거부에 새로 생긴 버스터미널 필자와 앞에 빨간 옷을 입은 가이드가 함께 타고갈 버스다. 아직 완공이 덜 된 것처럼 보이는 버스터미널이지만, 이미 완공된지 2년이 다 되었다.

단두와 나는 45분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단두가 버스 티켓을 예매한 후 찌아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버스 출발 10분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덜커덩거리며 내달릴 버스를 타고 갈 일이 아득하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1)_2
해발 800미터 정도 위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네팔의 산하!

나는 두 차례 안나푸르나 기슭을 걸어본 경험으로 히말라야 주변을 찾는 네팔의 도로 사정을 알고 있다. 령(嶺)을 넘고 산을 넘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듯한 네팔의 험준산령, 어렵사리 한 번 가는 길을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떨기도 하게 되는 그런 고도를 달리는 버스, 공사 중인 2,000미터, 3,000미터가 넘는 도로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아득한 이승과 저승의 극간을 달리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인간의 도전과 응전이란 참 무모하기도 하지만, 어이없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런 일들을 일상의 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또 초자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히말라야에서 생존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이 그들이다.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네팔 사람들과 동행이 된다는 것은 초자연과 동행이 되게 하는 그런 마력을 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트만두를 떠나 오쇼라즈니쉬 명상센터를 지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가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몇 차례 반복하더니 이내 천상과 천하가 만나는 지점들로 이어진 듯한 도로를 달린다. 흙먼지는 그 을씨년스런 느낌을 더한다. 달라진 것은 전처럼 검문 행렬이 길게 늘어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국이 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네팔의 정국은 불안하다. 7개 주요 정당에 마오바디(네팔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해서 그나마 안정감을 주고 있을 뿐이다. 나는 물병과 비스켓을 미리 준비해서 고통스런 여행에 대비한 덕분으로 안정감 있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찌는 듯한 아열대 더위에 덜커덩거리는 버스 안에서의 고통은 물과 비스켓으로 달랠 수 있다. 허기를 가시게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제법 넓은 구불구불한 갓길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아래를 굽어보면 1,000미터가 넘어 보이는 낭떠러지다. 도로가에 나무를 의지해서 급한 볼 일을 보는 사람들,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경사진 언덕에 전답을 만들어 놓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마찬가지 모습이다. 그렇게 덜커덩거리는 버스에 의지한 채 가는 길이 지쳐 힘들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은 여름 해변을 찾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단두는 나의 앞좌석에 앉았고, 나는 침묵을 강요받은 사람처럼 멍하니 찜통더위를 참아내며 길을 간다. 그렇게 지겨운 더위와 고통스런 좌석에 허덕이고 있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난 시간은 10시 40분이다. 

이른 아침 출발하여 지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라고 멈춰선 곳이 티르줄리(Tirsuli)다. 나는 식사 대신 빵과 콜라를 마셨다. 사실 시원한 것을 마시고 싶어서 콜라를 찾은 것이다. 단두의 식사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귤을 사자고 했다. 네팔 돈 30루피(R,S)에도 15개 정도의 귤을 살 수 있었다. 우리 돈으로는 500원이 안 되는 돈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48Km다. 한국 같으면 30분이면 되지만, 네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1시 20분 출발이다. 우리가 오늘 도착하려는 목적지 샤브르베시(Shyaburbesi)까지 단두의 예정 시간은 네 시간 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기대 수준을 맞추어 하는 말로 듣는다. 사실 도착했을 때만 알 수 있는 것이 네팔리 타임(Nepali Time)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험난한 길을 생사를 넘나들며 오후 5시 30분에 도착했다. 
사실 둔체(Dhunche, 2,030미터)에서부터 시작된 내리막길은 생사를 가를 만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위험을 동반한 채 2시간여 주행하는 버스에서 보낸 시간은 두려운 모험의 순간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비탈길에 산사태진 언덕과 그 언덕에 기댄 듯한 도로, 그리고 그 곁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길 한편을 장악하고 아래로 보이는 엄청난 낭떠러지......, 가는 길은 가더라도 돌아올 때는 또 어찌 이 길을 올 것인가?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아찔한 산비탈 천 길 낭떠러지......, 그 낭떠러지 아래 협곡 속에 도사리듯 자리한 곳이 해발 1,430미터 고지 샤브르베시였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1)_3
둔체의 아이들, 거네스 히말라야와 랑탕을 가는 길에 번화한 중심지에 사는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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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1)_4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달려온 버스가 머물고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트레킹 첫날밤을 보냈다. 나야샤브르벤시 해발 1360미터

지친 몸, 그러나 이제 그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앞으로 진행해갈 며칠간의 꿈같은 시간을 생각하기로 한다. 흰 눈에 덮인 히말라야의 신비를 보면 아찔한 고통도 잊게 된다. 나는 이미 두 번의 히말라야 산행의 경험을 통해 그 즐거움을 안다. 돌아갈 길에 대한 불안은 이제 잊고 히말의 고요와 정적 속에서 자아의 물길을 길어낼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달밧(dal(찌게), bat(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여러 차례 잠에서 깨어났다. 숨이 가쁜 느낌 때문이었다. 아마도 버스에서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고산지대라고 할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다. 어쩌면 높은 고지가 감싸고 있는 협곡에서 느끼는 기압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 두 차례의 산행에서와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6시에 깨어나 20여분 정도 뒤척이다 간단하게 씻었다. 곧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 피자를 주문하고 커피를 마시며 다른 네팔인 가이드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가이드인 단두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붓다 게스트하우스(Buddha Guest house)사장 파상 쉐르파(Pasang Shrepha, 46세)는 지난 1991년부터 2년 정도 인천에 있는 프라스틱 제조업체에서 일을 하였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한 것이다. 특히 샤브르베시는 거네스 히말라야와 랑탕 히말라야 여행객들이 모두 거쳐 가야하는 곳이며 근처에 코사이쿤드를 찾는 관광객 또한 많다. 그는 안정된 생활을 하며 아직도 한국말을 조금씩 할 줄 알았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참 뿌듯하다.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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