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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7)
- 정상에서 내려설 때 엄숙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2008-02-27 02:58:05최종 업데이트 : 2008-02-27 02:58:0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새벽별의 찬란함을 본 소감으로 아침까지도 그 벅찬 감흥을 멈추지 못했다. 홀로 아득한 세월의 종적을 밟아온 것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아침 바람은 찼다. 어제처럼 햇살은 살갑게 비추어주지 않았다. 

오늘은 라마호텔보다는 고도가 높아 비스듬히 빛살이 깎아지른 절벽처럼 경사진 각을 유지하며 비추고 있었다. 빛을 바라보는 느낌만으로도 매운바람을 피한 느낌이다. 어제 세면을 했던 기억을 따라 일찍 세면을 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을 찍는다. 
여행 중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메모보다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더 자연스런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주방에 가서 찌아를 마셨다. 공복에 마시는 찌아는 추위를 달래는 것은 물론 아침 목덜미를 따습게 해준다. 

단두가 일어나고 아침 식사는 달밧으로 주문하였다. 제법 네팔에 익숙한 사람처럼 달밧을 먹는다. 
낯선 외국인이 한식을 즐겨 먹는 것처럼 이해하면 될까? 한식 중에서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익숙한 외국인처럼 나는 네팔사람들의 주식인 달밧에 익숙해졌다. 낯선 나라에서 익숙함을 경험한다는 것처럼 편한 일도 없으리라. 
오늘도 어제처럼 조금은 무리를 해야한다. 샤브르베시에서 라마호텔까지 하루에 걸쳐 왔었다. 그런데 오늘은 고다다벨라에서 샤브르베시까지 가야한다. 여유있는 나그네 걸음은 아니다. 조금은 바빠질 걸음이다. 더구나 좀 더 낯선 길을 택하여 가는 길이다. 지난번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하산하는 것이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7)_1
아침 경사진 빛살이 비춰오는 고다다벨라에서

나는 안나푸르나를 걸으며 경험했었다. 그때 세상의 모든 기운이 정상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야말로 근엄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도 느꼈다. 
생사를 거는 산행에서 말이다. 세밀하고 철저하게 느꼈다. 그 느낌은 그곳에 이르러보아야만 알 수 있으리라. 참고로 말하자면 하산의 어설픔이 훌륭한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참담한 종말로 이끄는 것과 같다. 
어느 누구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현실에서 더 많은 욕망의 축적에 눈이 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존중과 존경을 받을 처지에서 지탄과 비난의 대상으로 변한다. 우리네 현실사회에서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이제 그런 모습을 대하는 것이 너무 싫다. 

사람을 존중하고 어른을 존경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른이 있어야 하고 욕망을 멈출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무한경재시대라는 낱말로 거친 우리의 삶이 대변되고 있잖은가? 하산하는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천 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그렇듯 삶을 반추할 수 있다면 좋으련마는 우리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끝없는 오르막길만 있는 듯이 착각하며 축적과 승부에 익숙해져 있다. 자족이 없는 인간은 불행하다.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낙관만 있어도 고달픈 일이다. 

필자는 지나친 낙관주의자로서 승부와 축적에서 지나치게 멀다. 그러니 곤궁하다. 하지만, 서글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다. 무한한 자유의 동산에서 시원하고 풍부한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사람의 향기에 취해 사랑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자부하기에 그렇다. 
돈 중심주의 사회에 고통만 날 아프게 할 뿐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나무처럼 푸르다. 조금 샛길로 빠져들었다. 사적고뇌가 겹쳐지는 순간이다. 독자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다. 랑탕 히말라야의 풍요를 벗어나면서 안타까운 현실에 젖은 문명 세계에 삶을 사는 모두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고백하면서......,

라마호텔을 거치면서 찌아를 한잔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잠깐의 휴식 동안 산장지기 쉐르파 형님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걸었다. 내리막길만이 아니다. 한참을 오르막길을 걷는다. 
길가다 제법 큰 도롱뇽도 만나고 원숭이도 만났다. 멀리 흰원숭이들이 나무를 타고 놀고 있다. 네 마리의 흰원숭이들이 그네를 타듯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밀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필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영악한 원숭이놈들이 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카메라에 담았지만, 어렴풋한 모습뿐이다.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7)_3
흰원숭이들이다. 라마호텔 아래로 내려오면서 많은 흰원숭이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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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7)_4
밤부(bamboo)라는 곳이다.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산장이다.

조망이 높고 넓어 좋다는 느낌이다. 등산을 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은 후련하게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야호! 하는 함성과 함께 걸어온 뒷길을 보며 그 길을 내려선다. 그렇게 확연히 지나온 길을 올라섰다 내려가는 길처럼 우리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길도 훤히 보인다면 사람들은 자기 삶에 좀 더 깊이 천착하며 살아갈 것도 같다. 그래서 삶의 엄숙함에 고개 숙일 사람도 많아질 듯하다. 
만약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생활에서 더 많은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하며 느끼는 것들, 특히 당일에 오르내리지 못하는 히말라야의 산행은 이렇게 많은 생각의 사슬속에 이끌리게 된다. 
나의 가이드 단두와 나는 그날 오후 샤브르베시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퉁바(우리네 기장으로 만든 술)라는 술을 마시며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여유를 즐겼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가이드 단두의 친구가 덴마크인의 가이드를 하며 타고 온 지프차에 빈자리가 있어 운전기사에게 수고비를 지불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샤브르베시에서 카트만두까지 지프차를 탈 수 있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던 둔체에서 샤브르베시의 험악한 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벗어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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