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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7)
안나푸르나 기슭에서......, 아! 다시 행복한 나여!
2008-03-19 18:10:38최종 업데이트 : 2008-03-19 18:10:3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8시 5분 다시 길을 나섰다. 
그 젊은 친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미역국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도와준 댓가로 50루피를 추가로 지불하라고 다와에게 일렀다. 
50루피면 천원이 조금 못되지만 그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햇살이 밝게 비추며 추위를 내쫓는 느낌이다. 
이 깊은 산골에서 추위를 이겨내는 일처럼 중요한 일도 없을 듯하다. 
아침부터 오르막길이다. 추위를 이겨내며 걷기에는 차라리 잘된 일 같다. 걷고 또 걸으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잠시 쉬기도 하며 걸었다.

다와는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좀 체로 말이 없는 친구다. 
고독한 여행자가 산길을 걷는 사람 아닐까? 다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에 산길을 걷는 사람처럼 충만한 여행자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온통 자신으로 가득차고 넘쳐 그 너머 세상을 풍요롭게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에 머물며 나도 따라 즐겁다. 그 너머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자신을 삭히고 삭히면 아마도 그 세상에서 한없이 풍요로운 샹그릴라를 경험할 수 있으련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7)_1
해발 2000~3000미터가 넘는 산골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이다.
      
덧없이 생각에 잠기며 걷고 걷다보니, 찬란한 히말이 또 다른 세상처럼 하얀 신성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그 산의 우듬지에서는 하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꽃처럼..., 
짧은 탄성을 지르며 고개 막바지에 닿는 순간, 카메라를 꺼내들며 다와에게 물었다. 꾼 히말? 저 산은 어떤 산인가? 다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에 응했다. 안나푸르나 투! 
버따세다나(Batasadana)에서 처음으로 안나푸르나를 대면하게 되었다. 

안나푸르나(버팔로 머리 위에 많은 눈이 쌓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의미)를 누가 이름 지었나? 그래 하얀 눈이 지상에 꼭지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거기서 피어나는 구름 꽃이 저 천상을 향해 손을 뻗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이 재를 넘는 자식들을 멀리 떠나보낼 때, 혹은 멀리 떠나있던 자식들이 다가설 때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천상을 향해 구름 꽃을 피우며 손사래를 치는 듯한 안나푸르나를 본 것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7)_2
산장 줄루피크의 주인이다. 그녀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풀마야란 이름을 가진 그녀의 한국식 이름은 꽃다솜(사랑)이다. 난 그녀에게 사과파이를 주문했다.
               
10시 15분이다. 15분 정도 안나푸르나를 감상하며 다와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머물렀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다시 편안한 평지라고 말했다. 
  
바람이 세차다. 찬 기운도 많은 바람이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옷매무세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며 다시 걸었다. 
혼자서 깊어지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무어라 말할 것이 있는가? 그저 걷고 걸으며 이런 저런 궁리에 몰입한다. 
간간히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 결국 기억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아란 없다. 아니 차라리 그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아를 보는 것이 훨씬 정직하고 바람직스런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살아온 날 동안, 살아갈 동안, 우리는 그렇게 그 기억의 공간에서 자신을 탄력적으로 얽어매고 살아가는 것이다. 

낯선 풍경들이 날 끌어안는다. 
난 옴짝하지 못하고 그 안에 안긴다. 편안하다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공간의 아늑함에 몰입하듯 빠져든다. 마치 미끄럼틀에서 내려가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안나푸르나의 기슭에 안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7)_3
네팔인들 스스로 샹그릴라의 땅이라고 부르는 새로 조성된 마낭 모습이다. 그 건너편으로 안나푸르나 고봉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호수도 있다.

반짝이는 것들, 눈부신 태양은 이 깊은 협곡에서도 그리고 그 협곡 속의 평지에서도 찬란하다. 
사실 햇살의 도발적인 빛보다 그 햇살을 받아 안은 산들이 찬란하게 빛난다. 협곡을 이루고 있는 산의 우듬지들, 산의 몸통들이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주연보다 조연이 더 아름다울 때가 이런 것인가 보다. 우리는 일상에서 햇살에 의해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살고 있다. 
어쩌면 사람도 그 햇살의 힘으로 반짝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눈망울을 맑고 밝게 반짝이며 살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햇살의 힘 아닌가? 
산새 울음소리가 가깝다. 오늘은 인적도 없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말을 몰고 오는 사람이 있다. 오던 길에 만났던 어린이의 삼촌이란다. 
며칠이 되어도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아 마중을 나온 것이다. 

나는 그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저 깊은 협곡 속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그도 영어를 할 줄 안다.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발치로 말을 달려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7)_4
흠데 비행장을 지나고 있다. 마낭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세차지만 평지의 평온함에 여유로운 마음이다. 
바람소리가 신비롭게 들려온다. 새소리도 멈춘 듯하다. 잣나무가 세찬 바람을 맞으며 들려주는 나무 울음소리가 바람소리조차 신비롭게 하고 있다. 
그렇다. 저 안나푸르나의 눈도 함께 녹아내리며 소리를 만든다. 그 눈들이 녹아 계곡을 이루고 그 계곡에 울음소리도 함께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 것이리라. 생각이 거기 미치자. 난 더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그저 머뭇거리며 바람소리를 녹음한다. 

그 공간의 파편 하나를 안고 가고 싶은 것이다. 
마치 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아 주워 담듯이......, 그렇게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의 머릿결이 찰랑거리듯 찰랑이는 잣나무의 흐느적이는 모습을 보고 있다. 
안나푸르나 기슭에서......, 아! 다시 행복한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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