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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읽기
굳게 닫혀 버린 편독에 대한 변명
2008-02-12 10:20:57최종 업데이트 : 2008-02-12 10:20:5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음식을 가려먹는 것을 편식이라 하듯, 한 방면에 치우쳐 책을 읽는 것을 편독이라 한다. 편식은 음식에 대한 기호(嗜好)가 강하여 한정된 음식만을 먹는다. 마찬가지로 편독도 책에 대한 기호가 뚜렷해서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언제부턴가 편독을 한다. 책을 읽는데 소설이 아니면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특정 장르에 치우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붙었다.

고등학교 때 잿빛 사춘기가 왔다. 그 시절에 철저히 혼자였다. 사는 것도 침묵으로 치달았다.
그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었다. 시적화자의 우울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나와 비슷했다. 그리움의 정서도 좋았다. 쓸쓸한 듯하면서도 미래의 아름다운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결의가 숨어있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한용운, 김소월, 이상화, 이육사, 유치환의 시를 읽었다. 시는 상실에 빠져있는 나를 달랬다. 그때 시가 없었다면, 나는 곁길로 갔을 것이다. 그 고독한 밤을 시(詩)가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의 책 읽기_1
소설은 현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만들어진 산문이다.

시를 즐겨 읽던 나는 대학에서도 문학 공부를 했다. 대학 캠퍼스는 꿈과 낭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성숙한 내면을 내가 직접 시로 표현할 수 있어서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을 맞고 서거했다. 정치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꽃이 피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현실은 더욱 힘들었다. 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현실의 벽이 높았다. 
우리는 거리로 나갔다. 매일 전투 경찰과 대치했다. 서로 힘없는 존재끼리 평행선을 달릴 뿐 현실은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쫓기듯 군에 갔다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학우들은 전투 경찰과 투석전을 하고 있었다. 캠퍼스는 최루탄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이런 노력 탓인지 정치권은 6․29 선언을 하고, 사회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때 소설 '장길산'을 만났다. 조선 시대 의적이었던 주인공 '길산'의 삶은 당시 억눌린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새로운 이념의 문을 열었다. 홍명희 '임꺽정'을 만난 것도 이때 불었던 민주화 덕분이었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여전히 지도층의 부패와 비리는 가시질 않았다. 권력도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영혼이 허기를 느끼고 있을 때,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소설뿐이었다. 소설은 현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만들어진 산문이었다.
조정래의 '아리랑'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읽었다. 소설 '한강'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길목에 있었던 젊은이들의 희망과 좌절을 읽었다. 박경리의 '토지'를 만났을 때는 감동이 더 했다. 민족의 삶을 소설로 남긴 박경리의 힘에 머리를 숙였다. 그의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소설 읽기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많이 모았다. 도서관에서도 혹은 대여점에서도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빌려 읽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남의 옷을 빌려 입는 느낌이었다.
책을 사서 읽으면 천천히 책의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었고, 영원히 소유하는 만족감이 있었다.

침실에 세 권 이상의 책이 있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책은 친구였다. 나만의 고통을 겪을 때 책은 나를 다독이고 치유해 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세상을 향한 삿대질도 힘을 잃었다.
오히려 세상에 내몰리면서 여유도 없이 살았다. 세상은 점점 가팔라지고 차갑기만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쟁은 계속되었고, 경쟁에서 내몰리는 아픔 또한 컸다. 때로는 베돌고 싶은데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책읽기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지친 영혼을 달래준 것이 책이었다. 거친 세상의 숨결에 힘들어 할 때 책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삶의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책은 조용히 내 곁에서 위안을 주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소설 읽기에 몰두하는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편식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듯 소설 편독에 빠진 나는 얼굴에 지적인 흔적도 보이지 않는 초라한 인생의 길목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늘 소설을 통해 삶의 현실을 짚어보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 빠져 있으면서도 독서의 지평을 넓혀보려는 의지는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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