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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걸까?"
2010-05-12 17:03:48최종 업데이트 : 2010-05-12 17:03:48 작성자 : 시민기자   유시홍

나는 비를 좋아한다.
포근한 봄날 늦은 밤에 살포시 내려 대지를 적시고 아침이면 생명의 합창을 쏟아 내게 하는 봄비. 
찌는 듯한 무더위와 맞짱이라도 뜨듯이 몇날 며칠을 퍼 부으며 울어대는 한 여름날의 소나기.
오래전 내 곁을 떠난 친구의 모습을 이끌어내고서는 밤새 낙엽과 함께 꺼이꺼이 흐느껴 우는 가을비. 
갈피를 못 잡고 불어대는 삭풍과 함께 창문을 두들기며 마음 까지 차디차게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비. 
이 비 들을 나는 모두 무척이나 좋아한다. 

모든 것이 알맞은 때가 있듯이, 꼭 내려야 할 때를 알고 내리는 비는 얼마나 반가울까? 

당나라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의 구절에서 제목을 가져 온 '호우시절'이란 영화를 감상한 것은 작년 늦은 가을, 겨울을 재촉하던 비가 주적주적 내리던 어느 날 심야였다. 

사랑의 슬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그 쓸쓸함과, 사랑의 기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루어 질것 만 같은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잔한 이야기라고 할까? 
영화는 끝이 나지만 사랑의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되는 사랑의 여운이 남는 것은, 아마 2부 제작의 가능성 까지 열어둔 감독의 상술이 아니라면, 나머지 이야기는 고스라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영화였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걸까? _1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걸까? _1

중국 청두로 출장을 간 남자가 현지 직원의 안내로 유명한 관광지인 시인 두보의 기념관인 두보초당에 갔다가 그곳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국 유학시절의 친구였던 여자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어색함도 잠시, 그들은  바로 지난 시절로 돌아간다. 키스도 했었고,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다는 남자와 키스는커녕, 자전거는 탈 줄도 모른다는 여자는 지난날 같이 하였던 많은 시간에 대한 기억을 서로 달리 떠 올리는 것도 잠시, 다시 가까워 지지만 결국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마지막 하루, 두보초당의 대나무숲 사이의 그들 모습과 세차게 내리는 빗물은 이들의 사랑이 또다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모든 사랑의 시작이 아름답듯이, 함께 있는 것만 으로도 너무나도 좋은 첫사랑의 그 느낌들처럼 이 영화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감정을 순간순간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그 이상 그들은 많은 것들을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이 비는 과연 이들이 사랑하기에 좋은 시절을 알고 온 걸까?  

T.V에서 오래전의 친구를 찾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어 버린, 다른 사람의 남자가 되어버린 친구가 오랜만에 나타나서 "나 그때 너를 무척 좋아했다". "나도 너를 좋아했었는데...'이런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상대방을 향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혹여 그 마음의 고백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멀어 질 수도 있기에 망설이다가 잃어버리는 사랑도 아마 많을 것이다.  이처럼 외 사랑으로 가슴속의 열병을 앓지 않으려면 많은 용기 또한 필요하다. 

사랑에도 때가 있다고 하듯이, 영화 '호우시절'처럼,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안다는 두보의 시처럼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서 맺지 못한 지난날을 아쉬워하지 말고, 늦어서 후회하지 않게 사랑한다는 말 너무 아끼지 말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열심히 사랑하자. 봄날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春夜喜雨 (춘야희우) - 봄 밤에 내린 비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계절을 알고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 한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따라 이 밤에 살짜기 스며들어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 
夜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판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의 배는 불을 외로이 밝혔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이른 아침 분홍빛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엔딩자막이 올라가고 비상구를 빠져 나오다 벽면의 대형 포스터속의 여주인공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가 물었다.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걸까?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호우시절, , 사랑, 유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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