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조병화 선생님
2010-05-14 07:34:25최종 업데이트 : 2010-05-14 07:34:25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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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때 많은 사람은 학과 선택의 고민을 한다. 조병화 선생님이 필자에게 2000년에 보내주신 시화집(조병화 시와 그림, 동문선, 1999년). 선생님께서는 내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 군에서 대학으로 돌아와서 달라진 세계에 베돌고 있는 나를 읽고 계셨다.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 수업 시간이 달라졌다. 선생님의 강의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열려진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선생님은 화폭 앞에서 멀리 떠 있는 구름을 끌어다가 채색을 하고 계셨다. 화폭에 여백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시는 선생님은 붓을 놓으시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신간 시집에 헌사를 써 주셨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내가 직장 생활에 얽매여 있다 보니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드렸는데 큰 선물이 왔다. 선생님의 시집과 함께 답장을 주신 것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늘 푸짐하게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문학 공부에 절대적 진리란 없다. 교사의 일방적 강의는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차단한다.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이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을 다듬도록 도와주어라.'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는 시인이 되겠다며 덤벙대며 요란스럽게 싸다니던 나를 한 번도 꾸짖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무던히 참으시며,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우리에게 현학적인 지식을 쏟아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 선생님은 한국 현대 시단의 거목이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 문학을 배우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께 배운 것은 제자 사랑이었다. 선생님은 대학의 부총장님이고, 사회 활동도 많이 하는 교수이셨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한낱 학부생에 지나지 않은 내가 방문을 해도 내치시는 일이 없었다. 시인으로서, 학자로서, 종합대학의 운영자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텐데 한 번도 싫어하지 않으셨다. 대학을 졸업 후에도 선생님은 나에게 사랑의 물줄기를 보내셨다. 직장 생활에 쫓겨 직접 찾아뵙지도 못하고 겨우 스승의 날이면 편지를 드렸는데 답장을 주시는 것은 물론 선생님의 신간 시집을 보내주셨다. 세월이 흐르면 그 마음도 닳을 듯했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연로하시고 병상에 계시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자를 사랑하신 그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 그늘에서 벗어나 줄곧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끊임없이 적셔주시던 사랑의 손길을 흉내 내며 살아오고 있다. 오늘날까지 내가 큰 과오 없이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것도, 결국은 교실에서 선생님 흉내를 내며, 아이들 앞에 서왔기 때문일 것이다. * 조병화 선생님(1921~2003) 시인. 호는 편운(片雲). 경기도 안성(安城) 출생. 1938년 경성사범학교, 1945년 일본 도쿄[東京(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49년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貝殼)의 침실(1952)' 등을 발표하며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고, 많은 국제대회에도 참가하였다. 현대적 도시풍의 서정 시인으로 자신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일상의 평이한 문맥으로 진솔하게 그려 일반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1960년 아시아자유문학상, 1974년 한국시인 협회상, 198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및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하였다. 1982∼1984년 시인협회장, 1989∼1991년 문인협회 이사장, 1995년 예술원회장이 되었다. 창작시집 53권, 선시집 28권, 시론집 5권, 화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이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도 겸하여 초대전을 여러 차례 가졌다(유화전 8회, 시화전 5회, 시화-유화전 5회 등). 그의 그림은 시 세계와 흡사하여 아늑한 그리움과 꿈이 형상화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1981년부터 인하대학교 교수(문과대학장, 대학원원장, 부총장 등 역임)로 재직하다 1986년 8월 31일 정년퇴임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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