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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마음의 훈장
6월이 오면
2010-05-14 08:48:02최종 업데이트 : 2010-05-14 08:48:02 작성자 : 시민기자   박주연

우리 집은 오빠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나 3대가 살았다. 

어느 날 85세의 나이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느 덧 시간이 흘러 나는 중3이 되었다. 내가 중3에 재학 중이었을 때 학교를 다녀온 저녁 무렵 할머니의 행동이 평소와는 달라 보이셨다. 
부모님께서 급히 한방병원에 모시고가 진찰받은 결과 뇌경색 진단을 받았지만 바로 수술 후 다행히 회복되셨다. 

그 후 건강하게 보내시던 중 치매증세를 보이셨다. 부모님 모두 직장에 다니셨고 오빠는 고3, 난 중3에 재학 중이라 낮에 홀로계신 할머니를 간병할 가족이 없어 아버지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마침 수원시에서 노인요양보험이 시범적으로 운영되어 부모님은 다시 직장에 나가시고 간병인이 방문하여 할머니를 돌봐주셔서 가족들이 마음 편히 각자의 일과 학업에 충실 할 수 있었다. 

아침이면 방문하여 간호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어찌나 친절하시고 마음이 좋으신지 학교에 다녀오면 나에게 간식까지 만들어 주셔서 그동안 할머니께서 해주셨던 것 만큼 감사한 생각이 지금도 절절하다. 

진심으로 할머니를 대해주시는 모습과 용변 등 실수를 많이 하시는 할머니를 싫은 내색 없이 이불빨래며 옷가지를 세탁하시고 식사까지 챙겨주시며 돌봐주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고 손녀인 나도 선뜻 하기 힘든 일을 아무런 불평 없이 해주시는 것을 보고 나라에서 해주신 이 제도에 정말 감사했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고 절실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나서 할머니께서 중환자실 입 퇴원을 반복하시던 8월 어느 날 오빠와 난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집으로 서둘러 왔다. 
그날따라 왠지 마음이 급해졌고 할머니의 건강이 의심되었다. 집에 와 할머니부터 살펴보니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아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집에 가족이 다 모였고 할머니는 나의 품에서 임종하셨다. 
우왕좌왕하는 가족들 앞에서 119를 부르신 간병 아주머니는 함께 도와주셨고, 하시는 말씀이 "가족이 모두 모일 때까지 힘들게 기다리신 것 같다"며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장례식장에도 오셔서 문상에 참여해 주셨고, 절에 다니신다며 차고 계시던 염주를 빼서 나에게 내 주시면서 할머니 편하게 보내드리고 다음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시면서 태어날 때부터 함께 살던 할머니를 여윈 큰 충격을 받은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주셨다. 

몇 해가 지난 지금은 새로운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모 댁에 사시는 외할아버지께서 주말이면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보내시고 가신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1박2일 여행계획을 세워서 3대가 함께한 아주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이모의 완벽한 식사와 간식준비 그리고 이모부의 유머, 아빠의 여유 있고 안전한 수송, 삼촌의 수준급 사진촬영, 귀여운 조카 등 어느 누구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모두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다. 
6월이 다가오니 이산가족이신 외할아버지의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외로움이 느껴져 온다. 

할아버지 마음의 훈장_1
할아버지 마음의 훈장_1
우리 집 현관에는 수원시에서 달아준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황금색 문패가 있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외할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은근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외할아버지는 옛날 고향에서 어렵게 지내시던 이야기와 6.25전쟁을 겪은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 군대 창설 이전에 미군 소속인 군 시절 이야기, 각종 표창 받으신 것 등 군대 생활을 오래 하셔서  이야기보따리를 푸시면 몇 시간이고 그칠 줄을 모르신다. 

하지만 나는 듣고 또 수없이 들어도 언제나 흥미롭고 할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의 산물이며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대를 겪어내신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건강하셔서 우리 가족과 함께 오래오래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즘 외할아버지께서는 참전용사 수당과 기초노령연금이라는 것을 받으셔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맛있는 간식이나 용돈을 슬그머니 주시는데 오빠와 나는 은근히 용돈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그 돈은 할아버지께서 당당히 살아가실 수 있는 힘이 되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용돈을 거절하기도 했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나라에서 주는 이런 저런 연금을 타서 어디다 쓰냐? 너희들에게 용돈 주는 재미도 있는 것이니 받아서 헛되이 쓰지 말고 공부하는데 쓰는 것이 할아버지의 바램이다." 하시면서 늘 챙겨주신다. 

우리집 현관에 있는 '국가유공자의 집' 문패는 평양이 고향이신 외할아버지의 마음의 훈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오시면 그간 주신 용돈으로 맛있는 치킨을 외할아버지와 함께 먹어야겠다. 
"할아버지 이번 주말에 제가 한 턱 쏠께요. 85세이신 우리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이번 주말에 뵐께요. 꼭 오세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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