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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61년간 이어진 사랑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2010-05-14 10:23:52최종 업데이트 : 2010-05-14 10:23:5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15일은 제 29회 스승의 날이다. 
마땅히 존경과 감사의 날이어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서로가 부담스러운 날이 되어 버렸다. 

이즈음 옛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본다. 지금처럼 세련되지도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사제지간 믿음으로 가르치고 따르던 그 순수한 시절은 아직까지도 가슴 속에 담겨 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를 얻어 남도 강진답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18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500여권의 장서를 집필한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님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돌아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다산 정약용 선생은 수원 화성을 축성할 때 기초가 된 '성설'을 쓰고 과학적인 축성 기구인 거중기 등을  만든 실학자로서 수원과는 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다. 

오늘은 스승의 날을 앞두고 1박2일 강진에서 보고 느끼고 공부한 것들 중에 한양대 정민 교수가 들려준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내가 황상(1788~1863)에게 문사 공부할 것을 권했다. 
산석(황상의 아명)은 머뭇거리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鈍)것이요, 둘째는 막힌(滯)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데 있다. 둘째로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은 들뜨는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천착하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지고, 막혔다가 뚫리게 되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이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 해야 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나는 동천여사에 머물고 있었다."

이글은 다산 선생이 동천여사(東泉旅舍)에서 학동들을 가르칠 때, 15살 난 소년 황상에게 써준 글이다. 
소년은 이글을 받고 그로부터 61년의 세월이 지난 76세의 나이가 되도록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동안 잊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왔노라고 '임술기(壬戌記)'에 기록했다. 그간에 왕래한 소소한 글들까지 일일이 모으고 고귀한 스승님의 조언들을 묶어 책으로 남긴 것이다. 

스승의 한마디에 힘을 얻은 제자 황상은 일평생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노년이 되어 드디어 문단에 이름을 날린다. 스승 사후에 만난 추사(秋史)형제의 지우(知遇)를 입고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부단히 쉼 없이 노력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다산선생이 유배가 해제된 후 고향 마재로 돌아갈 때, 몇몇의 제자들은 스승의 뒤를 함께 했다. 
또한 그 후로도 스승을 뵈러 마재(현재 남양주)까지 찾아가곤 했지만, 제자 황상만큼은 행여나 스승님께 누를 끼칠까봐 찾아뵙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승 다산이 세상을 뜨던 해 1836년 17일을 걸어 마재를 찾는다. 18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스승을 만났다. 다산은 내려가는 제자에게 한통의 편지와 책, 부채, 여비까지 쥐어주며 마지막 이별을 한다.

그 편지에는, 내가 상을 당하더라도 굳이 다시 여기(마재)로 올라올 생각 말고 그곳 강진에서 연암과 함께 한 번의 곡(哭)으로 끝내라는 스승의 배려담긴 편지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스승의 부음을 듣고 다시 마재로 올라가 상을 치룬 후에 강진으로 돌아온다. 스승의 애틋한 마음과 제자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눈물을 머금게 한다.

스승과 제자, 61년간 이어진 사랑_1
스승과 제자, 61년간 이어진 사랑_1

최근 들어 들썩이는 교단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 
극히 일부의 몰지각한 분들에 의해 교권이 흔들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해마다 스승의 날 아침 조회시간에 반장이 어여쁜 꽃바구니를 탁상에 올려놓고 선생님이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리던 추억이 떠오른다. 
해맑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포장해 드리며 노래를 불러드리던 스승의 날 아침풍경이 새삼 그립다. 

사제지간의 신의와 사랑이 있는 다산과 황상 사이에 오간 울림의 편지를 떠올리며 '스승의 노래'를  가만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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