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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2010-05-31 23:42:14최종 업데이트 : 2010-05-31 23:42:14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이사를 하거나 아주 큰마음을 먹기 전에는 창고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대청소하는 일이 없다. 
혹여 창고에 있는 물품이 필요해서 꼭 찾아야 하는 경우에는 다를 수 있지만 몇 년째 이사 올 때의 모습으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들여다보게 되는 창고는 외면하고 싶거나 보물창고 같은 양면을 가졌다. 

처음에는 창고에 있는 공구함을 찾으려고 했는데 창고 문을 여니 친절하게도 상자마다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 유치원 다닐 때 쓰던 자료집과 중간 중간 사진을 첨부한 파일집도 있고 유년시절의 앨범도 있다. 어느새 원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창고 문을 연채로 박스를 열고 자료집을 읽기 시작했다. 
큰아이가 바느질로 자동차 그림을 그린 것도 있고 모래바닥에 앉아서 돋보기로 종이 태우기 실험하는 것도 있다.  흙바닥에 앉은 모습이 몸을 기울이다 못해 거의 엎드려서 보는 자세다. 하얀 바지에 노란 조끼를 입은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훨씬 더 귀엽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던 동화 비디오테이프와 재롱잔치와 초등학교 학예 발표하던 테이프도 있다. 월트디즈니사의 시리즈로 나온 만화도 꽤 많다. 이런 것들이 아직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펼쳐 놓고 보니 엄청난 양에 기가 질린다. 

재산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_1
재산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_1

큰아이의 백일사진부터 가족사진들이 담긴 박스는 정리도 참 잘해 놓았다. 액자마다 개별포장을 하여 던져도 파손되지 않겠다. 가족사진도 참 많다. 해년마다 찍은 때로 있고 이삼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찍었던 모양이다.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아이들 하복 입은 모습이니 자주 찍긴 찍었었나보다. 

살아가면서 꼭 해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넓은 벽을 온전히 사진으로 장식하고 싶은 생각이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찍었던 발 사진부터 성장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가족사진을 모두 전시해 놓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이사 할 때마다 짐이 됨에도 쉬지 않고 가족사진을 찍은 이유였을 것이다. 

창고 문 앞 앉아자리 잡은 곳을 기준으로 뺑뺑 돌아가며 산이 생겼다. 베란다가 창고가 되어가고 있다. 

 '편지' 라고 쓰여 있는 상자를 열자 파일들이 쏟아졌다. 파일 제일 첫 장엔 편지 주인공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간호사복을 입고 코스모스 핀 꽃밭에서 포즈를 취한 친구가 웃고 있다. 장사하는 엄마를 도와서 어린 시절에도 밥도 잘하고 집안 살림을 잘 했던 친구다. 지난 날 너무 이른 나이에 살림을 했기 때문에 요즘은 집안일에는 손 놓고 싶다고 투덜거리지만 집에 가면 구슬이 흐를 정도로 반짝반짝하게 해 놓고 사는 친구이다. 

망상해수욕장에 함께 찍는 사진의 주인공은 지금 약국을 운영한다. 
여름엔 바다에서 아이스바를 팔아 돈을 벌어 가을에 여행을 가고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팔아 봄에 여행을 하고 싶다던 친구다. 아직 늦둥이가 있어서 꼼짝 못하고 있지만 가끔 주말에 훌쩍 떠나는 것을 보면 옛날 피가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트럭을 얻어 타고 석류굴이며 불영사며 일요일에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이 돌아 다녔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일하면서 사진 공부를 했던 엔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감성적인 글도 매우 잘 썼던 아이였다. 눈이 크고 보이시한 외모에 사진 속 모델도 자주 하였고 직접 사진전도 열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가끔 다시 연락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직장 생활을 했던 언니, 인쇄한 것처럼 글씨체가 좋아서 편지를 보여주면 친구들 입을 딱 벌리게 했던 오빠의 편지가 좁은 공간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했다. 

생각해보면 일기장과 편지들은 재산목록 1호다. 
육아 일기는 아이들이 결혼할 때 선물로 줄 생각이지만 흡족하게 관리를 하지 못한다면 다시 뺏어 올 것이다. 일기장이나 편지들이 지나간  세월과 함께 종이 귀퉁이는 벌써 누렇게 변한 것도 있다. 추억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언젠가는 하얗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피 끓는 젊은 시절 열정을 얼마간은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다. 

정리하는 마음은 베란다에 쌓인 상자며 흐트러진 파일들이 골칫거리 짐처럼 다가왔다. 다시 제 자리에 정리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 휴. 난 알지 못하는 일이야' 두 눈 질끈 감고 편지파일 몇 권을 가슴에 안고 들어와 베란다를 통하는 문을 닫아버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 추억에 빠져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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