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칼럼>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함박눈이 되자
2007-11-21 17:40:16최종 업데이트 : 2007-11-21 17:40:16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안도현의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

해마다 이맘때면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가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우리'를 '눈발'에 비유하고 있다. 이 시에서 암시하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흔한 겨울밤처럼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물질이 풍부한 세상에서 저마다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낮은 곳을 살펴보면 추운 겨울밤을 이기기 위해 손을 녹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면 그들의 초라한 집은 쓸쓸한 저녁 해가 더 빨리 찾아온다. 그들은 기댈 이웃도 없고, 마음 나눌 친구도 없다. 그들은 추운 겨울이면 더욱 춥게 지내야 한다.

올해도 부진한 고용상황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많다. 
최근에는 고유가로 인해 물가가 불안해지고, 낮은 경제성장률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많아졌다. 
특히 시대적 변화로 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고, 경제적 이유를 내세워 이혼을 쉽게 하면서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우리 조상들은 정(情)을 나누며 훈훈하게 살아왔다. 그토록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았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 돕는 공동체의 풍속을 발전시켜 왔다. 
인정은 경제적 이해와 타산이 아예 없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엉키어 있을 뿐이다. 남루한 집에서 황소 같은 외풍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궁이가 아니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담 너머로 주고받는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인정을 잃고 각박하게 살아간다. 
지금은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는데, 그토록 가난함 속에서도 우리 삶 속에 융해되어 있던 정이 상실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즈음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관련이 있다. 
차가운 콘크리트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위아래 층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이 없다.

굳게 걸어 잠근 자기들만의 삶터에서 어른들은 이종격투기를 즐기고 있고, 아이들은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컴퓨터 게임을 한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을 앞세워 험한 말을 함부로 뱉는다. 학교에서는 친구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킨다. 
더불어 사는 삶이 없으므로 거기에서 피어나는 인정도 없다.

지금 사회는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나 살기에도 바쁘고 힘이 부친다. 
이럴수록 이웃에 관심이 필요하다. 나만 편안하면 즐거운 세상처럼 될 것 같지만 이웃이 따뜻하면 더욱 따뜻한 세상이 된다. 
꼭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행을 베풀면 그 선행은 반드시 배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는 '-라면'이라는 말과 '-되자'라는 말을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있고, 낭독하기도 편하다는 등 문학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 쉬운 시어를 사용하여 상징적인 표현을 적절하게 나타냈고, 시적화자의 마음을 간결하게 전하는 압축된 표현이 뛰어나다. 
이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차원의 노력과 실천을 단출하게 강조하고 있는 주제도 감동적이다. 그리고 상처받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시를 읽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인터넷, 영화, 텔레비전 등 매체의 풍요 속에 산다. 그리고 저마다 주식 투자에 영어 공부에 컴퓨터에 매달리고 있어 여유가 없다. 
이런 가운데 한가하게 시를 읽는 것은 가난한 시대의 낭만을 만지작거리는 것이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는 관념의 소산이 아니라, 삶이다. 
문학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듯, 이 시에서는 우리가 소망하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 속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다. 
시인은 상처받은 이웃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되자고 노래하는 것처럼, 시는 우리들에게 화려한 매체보다 더 따뜻한 삶의 의미를 준다.

지금 눈을 돌려 주변에 어려운 사람에게 혹은 친구,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베풀어 보길 바란다. 
꼭 경제적 어려움의 고통만 느끼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능 시험을 못 친구, 무한 경쟁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감성이 여린 친구, 사랑에 실패한 친구도 위로의 대상이 된다. 
이 겨울!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함박눈이 되자.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