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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5)
2008-03-15 21:17:16최종 업데이트 : 2008-03-15 21:17:1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아침이 상쾌하다. 하지만, 어젯밤은 약간의 추위가 느껴졌다. 그저 2,400미터가 넘는 곳에서 잠에 든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우리 민족의 지붕 정도 될 높이에서 잠들었다 깨어났다. 
몸이 피곤한 증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여유 있게 걸어야한다. 아직도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고도를 높여 올라가야한다. 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리가 멀었다. 
일정표로 보자면 오늘은 피상(Pisang)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피상은 3183미터다. 그런데 너무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면 고산증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며 그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곳이 드크루포카리(Dhukure pokhari)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5)_1
산장의 주방이다. 산장마다 저렇게 부뚜막을 만들어 음식을 짓고 찌아를 끓여 마신다.

바람이 세차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한 덕분으로 오늘 걸음걸이가 많이 힘들다. 하지만, 예정보다 짧은 거리를 약속한 날이니 오늘은 휴식이 충분하리라. 어제 많이 걸어 무리가 따른다. 
원래대로라면 브하가르챂(Bhagarchap)에서 머물 것이었으나 가능한 일정을 당기고 고도를 조절해 가자는 생각으로 처음에 걸을 수 있는 만큼 많이 걷자는 것이 내 계산이었다. 
다와 쉐르파도 이에 동의했다. 사실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겨운 날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우리네 소나무를 보는 것처럼 잣나무가 우거져 삭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잣나무에 잣은 다 빠져 나갔겠지만, 그 열매를 담았을 방울들이 수없이 바람에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차메(Chame)를 지나고 코토(Koto)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막 자리를 잡았는데 장총을 어깨에 멘 두 명의 군인이 주방에서 나오는데 순간 긴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순찰을 돌다가 주방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곳에서 주문을 한 후, 가지고 간 신라면을 꺼내 그들을 위해 내놓았다. 신라면 하나를 끓여서 두 사람의 군인이 나누어 먹었다. 그들은 맛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신라면을 먹고 있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실탄을 장전한 군인이었지만 앳띤 얼굴의 20대 초반 청년이다. 얌브하드르(Yambhadur, 23세)와 라주 버스넷(Raju basnut, 20세)은 모두 18세에 입대한 현역 군인이다. 
그들에게 월 급여가 얼마인지 물었다. 라주 버스넷은 5,000루피(R,S), 얌브하드르는 5,600루피(R,S)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8만원 전후가 그들의 월 급여다. 
안나푸르나 국립공원 트레킹을 위해 외국인이 지불하는 입장료가 4,000루피라는 점을 감안하면 입장료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그들의 급여가 얼마나 소박한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들은 실탄을 장전한 채로 두 시간씩 두 사람이 일개조로 순찰을 돈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5)_2
오른쪽은 얌브하드르(Yambhadur, 23세)와 왼쪽은 라주 버스넷(Raju basnut, 20세)로 둘은 현역 군인이다

나는 그들에게 총은 모두가 버려야 할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세상 모든 세력들이 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팔의 미래를 위해서는 앞으로 네팔의 젊은이들이 마오바디를 포함해서 모두 함께 좋은 방법을 찾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다.
사실 실탄을 장전한 채 마오바디와 대치하고 있는 군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분위기 파악을 하고 싶었다. 긴장 정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여유를 갖고 있었다. 

우리처럼 징집제가 아닌 모병제인 네팔에서 군인이 되는 길도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그러니까 네팔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확실한 직업을 가진 군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군인으로서 살기를 희망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서 적의감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긴장이 크지 않은 내부세력과의 대치가 그런 여유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친김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DVD에 담았다. 지금 그들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허망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끝으로 세계가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5)_3
산골이나 도시의 마을이나 그 초입마다 저렇듯 드나들이 탑문이 있다

* 총구의 힘

총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묻지 말자.
묻지 않아도 될 것을,
굶어죽는 사람이 사는 땅에서
총과 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지 말자.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이제라도 거두어야지
거두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지
힘없이 거리를 걸으며 뒤척이는
어미 소와 어린 송아지가 있다.
네팔 카트만두 거리에 모습
어느 곳엘 가도 그 모습 볼 수 있으니
왕과 국민이 그렇게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뒤척이는 네팔 땅에서 나그네도 절로 눈물짓네.
이 비극의 종점을 두고 누가 샹그릴라라 말했나
나그네의 허망한 숨소리, 아마도 나그네의 헛웃음소리
어서 총구의 야욕을 거두지 않는다면
왕궁 가는 길목에 꽃도 피지 않으리라
이 비극의 정점에서 이제 거두어야하네.
아! 비극의 정점에서
총구의 야욕을 이제 거두어야하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초점 잃은 아이의 눈에 빛을 주는 길이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어미 소와 어린 송아지가 힘을 찾는 길이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5)_4
흠데 비행장 인근의 줄루피크라는 산장에서 만난 산골어린이, 멀리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때 마르틴과 어르준이 들어왔다. 
전날 우리 일행이 한발 앞서서 어제는 서로 다른 숙소에 머물렀다. 그런데 마르틴이 발에 물집이 잡혀 오늘은 더 멀어질 듯하다. 우리가 드크루포카리(Dhukure pokhari)를 일정으로 잡고 있는데 그들은 브랑탕(Brangtang)을 향해 걷고 있다고 했다. 
브랑탕과 드크루포카리는 3시간 이상 차이가 나는 거리라고 한다. 나는 가능한 일정을 앞당기고 싶어서 그들과의 동행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마르틴에게 가능하면 드크루포카리까지 걷자고 했다. 
점심식사 시간이니 아직도 시간은 많다면서......, 

그러나 그날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햄프(대마초)를 피워대면서 의기투합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호흡이 벅찰 것 같기도 하다. 
브랑탕(Brangtang)은 추위가 느껴졌다. 걸음을 옮겨 딛을 때마다 세찬 바람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다. 멀리 보이는 히말 쥴리를 보며 신비로움에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 반대편 마나수르를 뒤로하고 히말 쥴리 방향으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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