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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봄날의 개꿈
가족이란 함께 있을때 가장 행복하다
2010-05-18 01:07:35최종 업데이트 : 2010-05-18 01:07:3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남편과 아이들을 출근과 등교 시키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겨보는 아침드라마를 보고 또 설렁설렁 한승원의 수필집을 읽었다. 
11시에 약속 된 큰아이 학교 급식소위원회에 참여하고 여러 위원들과 점식급식을 함께 먹고 모니터링을 하고 돌아왔다. 

주말에 시골에 다녀왔다는 핑계로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데 옆 동에 있는 친구가 화초를 새로 샀는데 참 예쁘다고 보러 오라는 전화를 했다. 
바쁜 일도 아니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고 바로 집을 나섰다. 이름이 생소한 보라색을 띤 꽃이었는데 꽃잎이 오글오글 작아서 예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봄날의 개꿈_1
화려한 봄날의 개꿈_1

시큰둥하고 있는 표정에 "피곤해 보인다. 차나 마시고 가서 쉬어라" 틱틱 거리는 억양으로 말을 쏟고는 주말에 운동하러 갔던 얘기를 풀어 놓는다. 꽃 보러 오라는 것은 핑계고 공 잘치고 왔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추차를 몇 모금 마시기도 전에 대구가 고향인, 그래서 말소리도 엄청 빠르고 시끄러운 소음 같이 들려 몇 년을 함께 어울려도 잘 적응이 안 되는 친구가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일어설까' 생각 못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기회를 놓치고  남들 저녁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 질긴 엉덩이를 일으켜 세웠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시각에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널었다.  햇빛이 좋았던 한낮이라면 벌써 말랐을 것을 후회하면서 왠지 기운이 부치는 것을 느꼈다. 

퇴근시간이 되어 남편은 회식이 있어서 늦을 예정이란다. 

기운 없어 하면서 너저분한 집안을 다 마쳤다. 
바닥도 뽀듯뽀듯 닦고 걸레까지 짜 널었다. '밥을 좀 먹어 볼까?' 생각하다가 친구네에서 주전부리를 먹었던 생각에 굳이 혼자 먹겠다고 밥하는 것도 우습고 배고프지도 않으니 그럭저럭 한 끼 건너뛰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작게 하고 아침에 보던 수필집을 들었다.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자들 일 것이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베란다에 화초들을 바라보는데 '띵동' 문자오는 소리가 들렸다.  
쿠션에 턱 걸쳐져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손이 재빠르게 휴대폰을 잡았다.
 "저녁밥 먹었어요. 자유시간이라 놀고 있어요." 발신인 "요술 곰"이라고 쓰여 있다. 아침에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간 작은아이다. 

작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고 나면 정작 재미있고 신나게 놀 예정이었는데 생각만큼 즐겁지가 않았다. 해가 지고부터는 더욱 그랬다. 
오늘 큰아이도 학원까지 다녀오려면 자정이 넘을 것이고 남편도 늦을 계획이라고 말했으니 오늘이 가기 전에 무사히 귀가하면 고마운 것이다. 딱히 무엇이 잘못된 것도 없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슬슬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히죽히죽 거리며 잘도 웃었는데 오늘 게스트들의 수다들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 자꾸 시비를 붙어 보고 싶다.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려봐도 신통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남녀비교 탐구'를 보다가 '헐~ 저런 것도 다 방송꺼리가 되는구나' 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각이 되어 플러그를 확 신경질 적으로 뽑아 놓고 이방 저방 돌아보고 아이들 책상에도 앉아 오랜만에 연필도 깎았다.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 그렇지. 저녁을 안 먹었었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녁이 먹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밥은 먹고 싶지 않았다. 큰아이가 간식으로 먹던 라면이 보였다. 작은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끓였는데도 빨리 끓지 않고 더디 끓었다. 스프를 먼저 넣고 면을 넣어 덜 익었다 싶었는데도 쟁반에 담아 신문을 펼쳐 놓고 먹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면서 먹으면 덜 익었던 면이 자연스레 익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맛있다. 꼬들꼬들 면이 살아있다. 아이들은 이런 맛으로 라면을 좋아하는 게지 싶었다. 맛있게 마지막 남은 면 한 올까지 건져 먹고 금방 후회가 되었다. 내일은 얼굴이 팅팅 불어서 '큰 바위 얼굴'이 될 것이다. 

화려한 봄날의 개꿈_2
화려한 봄날의 개꿈_2

오늘 하루가 왜 짜증스럽고 기운 없이 보낸 것을 하루가 다 가고 다음 날을 맞을 즘 깨달았다. 작은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면 큰아이도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고 남편도 운동 오래하고 늦은 귀가를 유도하려 했었다. 
그 사이 오래도록 자유의 시간을 가지겠노라고 마음먹었는데 오늘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고문으로 느껴졌다.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긴 시간들이 지속된다면 마음의 병 '우울증'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가족이 함께 있을 땐 가끔은 귀찮고 혼자만의 시간을 꿈꾼다. 그러나 막상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똑딱거리는 시간의 무게에 질식해버릴 것 같다. 가족이란 함께 있어서 제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혼자 놀기 고수'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지인들도 혼자 참 잘 논다고 하길래 정말 잘 노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즐겁게 놀기 시간이란 해가 지기 시작하면 자정이 되면 요술구두의 마법이 풀리듯 한계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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