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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는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어요
영화 '친정엄마'를 보고 내 친정엄마를 생각하다
2010-04-29 13:51:40최종 업데이트 : 2010-04-29 13:51:4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현재 상황으로 봐선 친정엄마가 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두 아들을 옆에 두고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딸을 낳을 것 같지도 않고 또 육아에 매진하면서 살 용기도 없다. 
그러나 남자들이 천지인 집안에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성보다 함께 같은 느낌을 공감 할 수 있는 동성인 딸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다.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나이에......' 

친정엄마는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어요_1
친정엄마는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어요_1

영화"친정엄마"를 보고 나오면서 친정엄마가 될 수 없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친정엄마란 장성한 딸에게 아픈 손가락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에야 당연히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친정엄마는 7살 때 외할머니를 여의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오빠와 남동생 셋이 함께 살았다. 다행이 가세가 넉넉하여 먹고 사는데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 동생들 때문에 친정엄마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오빠들과 동생들이 공부하는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치셨다 한다. 어린나이에 새벽밥을 먹여 오빠를 등교시키고 철모르는 동생들을 건사하고 집안일을 모두 했다니 먹는 것 빼고는 작은 어깨가 얼마나 고달팠을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스무 살이 되어 가난한 집 장남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다섯 명의 시동생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평생을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털끝만큼도 갖지 않고 희생하면서 사셨다. 당신이 낳으신 자식들도 출가하여 두 분이 단출하게 지낸지도 몇 년이 되었다.  지내 온 아픈 기억들이야 장편 소설책도 모자라는 삶이 여자들의 삶이고 엄마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딸의 눈에는 속 썩이는 자식도 없고, 아픈 사람도 없으니 딱히 걱정거리도 없어 보이는 친정엄마다.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은 소일거리로 하고 여행도 다니고 딸네 집에 와서 며칠 쉬다 갔으면 좋겠다. 여름에 언니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지 못해서 여름에도 발이 시리다고 하는 엄마와 찜질방에 가서 땀도 쭉 빼고 시원한 식혜를 먹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찜질방에 가면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여기 저기 누워있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아버지는 엄마가 없는 동안 강아지 밥 주면서 집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친정엄마는 젊은 날 "차를 한 번 실컷 타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으니 엄마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였다. 어른들 밑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모 삼촌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던 유년시절 학예회나 소풍 그리고 운동회를 할 때에도 엄마는 학교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6학년 어버이날 학예발표회에서 발레를 했을 때에도 할아버지께서 저녁 도시락을 갖다 주었고 매 년 하는 운동회에도 항상 할머니가 점심을 가지고 오셨다.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이 불만이긴 했지만 언니 오빠 때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니 친정엄마가 학교에 딱 한번 오긴 했다. 중학교 2학년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우산을 가지고 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청소만 끝나면 하교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조차 기다려 주지 못하고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조금은 야속했었다. 당신의 부재를 어른들께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이젠 차타고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다."하신다. 
 "날 따뜻해지면 꽃놀이나 갑시다."하면 "이젠 꽃도 별 것 별 것 다 구경해서 볼 것이 없다"한다.

"그러면 서울구경이나 갈까요?" 하면 "이젠 서울구경도 많이 했고 사람구경도 많이 했다."한다. 

매번 입으로만 생색내는 실없는 딸을 만들고 "시간되면 놀러 와라"하신다.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집안을 일으키고 사남매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마음조리면서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자식이란 부모에게 기쁨이면서도 애물단지 같기도 한 모양이다. 

아직도 "끼니 거르지 말고 밥 잘 먹어라. 차조심해라"를 하신다. 
"내가 뭐 앤가?" 하면서도 오래도록 친정엄마의 걱정을 듣고 싶은 모자란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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