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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의 그리움에 사무치다
2010-04-22 13:44:20최종 업데이트 : 2010-04-22 13:44:2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아주 가끔 하늘이 천정 가까이 내려와 먹구름을 가져오는 날이 좋을 때가 있다. 
간밤에 조용하게 찾아 온 비가 얼마 동안이  될지 모를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주말을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주고 또 다시 바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창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 온몸으로 상큼한 바깥 공기를 받아들인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을 느꼈다. 어느 사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풀 향기도 폴폴 나는 것 같다. 

막 집을 빠져나간 가족들의 모습이 한 뼘 정도로 작아 보인다. 습관적으로 창문께로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는 작은 아이의 답례로 애정을 담은 손짓을 허공에 날려 보낸다. "이제는  됐어요." 하는 흐뭇한 표정으로 총총한 발걸음으로 형의 뒤를 따른다. 보기 참 좋은 그림이다. 

지난 시간의 그리움에 사무치다_1
지난 시간의 그리움에 사무치다_1

오늘따라 제라늄 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봄 처녀의 입술보다 더 붉은 꽃잎이 버림받은 것 같아 안쓰러워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아직 개화 할 꽃 봉우리가 많지만 요즘 들어 낙화하는 양이 더 많다. 매일 인정 없이 쓱쓱 쓸어버리는 마음이 매정하다싶어 바닥에 있는 꽃잎을 치우지 않고 며칠 구경하기로 했다. 

렌지에 올려 논 빨간색 주전자는 추를 딸각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물이 다 끓었으니 빨리 와서 "나 좀 봐 달라"는 재촉이었다. 프림과 설탕 그리고 커피가 짬뽕이 된 봉지 커피를 머그컵에 툴툴 털어 놓고 뜨거운 물을 넣으니 뽀그르르 몇 개의 거품을 만들더니 이내 향긋한 커피향이 미각을 자극했다. 한 입 입에 물고 가만히 음미해 본다. "아! 맛있다." 

뉴스 하던 TV는 어느새 아침 드라마로 바뀌었다. 뭔가에 홀린 듯 한손에 커피를 들고 등받이를 치우고 소파에 앉았다. 뻔 한 결말이 보이지만 멋있는 남자배우들 보기가 즐겁고 또 밥상위의 그릇들과 소품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요즘 다육식물이 예쁜 소품으로 많이 등장한다. 배우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다육식물의 이름을 기억해 낼 때 또 다른 작은 기쁨을 느낀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자주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을 지인들은 가끔 핀잔을 준다. 
"이젠 공주병에서 벗어날 때도 됐지 않니?", "넌 언제 철들래?"하는 소리를 들어도 타고 난 품성이 마음을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바꾸어지는 것도 아니다. 
계산 없이 사람 만나기가 무섭다는 요즘에도 겁 없이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 이해타산이 결부되어 돌다리를 두드려 가며 건너는 심정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비하여 복이 많은 사람이다. 조상들의 덕행이 나에게 미쳤을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 천지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현관문만 벗어나 밖에는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서로 할퀴면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세상이다. 사는 방법이 모두 다르고 기쁨과 아픔의 크기도 다를 진데 모두 같은 자로 가늠하려 한다. 빠른 걸음으로 빨리 빨리 갈 때도 필요하겠지만 가능하면 천천히 가 보자.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지난 시간의 그리움에 사무치다_2
지난 시간의 그리움에 사무치다_2

요즘은 거리에서 빨간 우체통을 보기 쉽지 않다. 빠르고 편리한 이메일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편지지에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아날로그 방식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 보다는 월말이 가까워지면 짜증나는 청구서들 뿐 우편함이 귀찮은 애물단지가 되어 가고 있다. 

밤이 깊도록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쓰고 소설책을 읽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물질적으로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뒤돌아보면 마음만은 넘치도록 풍족한 시절이었다. 내가 그 시간을 사랑한 것도 아니었는데 미칠 듯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움, 제라늄, 우체통, 편지, 아날로그,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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