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가까운 거리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우리
2010-04-13 07:09:01최종 업데이트 : 2010-04-13 07:09:01 작성자 : 시민기자   임동현

집사람은 추운데 운동을 하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퇴근 후 집에서 티비를 보는 것이 주된 여가생활이 되어 버렸고, 늘어나는 뱃살과 줄어드는 근육량에 안타까워 하곤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기온이 세계를 덥친다고 하더라도 봄은 봄이기에 한겨울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저녁기온을 핑계삼아 움직이기 싫어하는 집사람을 떡뽁이로 꾀어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떡볶이 프랜차이즈점은 문을 닫았을 시간임을 짐작했겠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 따라나와 준 아내가 고마웠다. 

아파트 단지앞의 신호등을 건너 앞서 약속했던 떡볶이 집으로 방향을 정하고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금새 도착할 수 있었고, 역시나 예상과 같이 간판의 불이 꺼진 뒤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집사람이 잠시 실망하는 듯 하였지만 얼른 잊어버리고 즐겁게 봄날의 밤 산책은 계속되었다.

가까운 거리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우리_1
가까운 거리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우리_1

약간 더 걸어올라가다 보니 옆 아파트단지가 나왔고, 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보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펜스위에 장미덩쿨 같은 것이 둘러쳐저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덩쿨과 함께 철조망이 설치되어 가시같은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었던 거였다. 

순간 '헉'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혹시나 철조망이 있는 걸 모르는 누군가가 울타리를 손으로 움켜 쥐기라도 했다면 하는 상상에 몸서리가 쳐졌다. 과연 이러한 철조망으로 좀도둑을 막는 다는 것인지 아님 무단으로 아파트에 출입하는 사람을 막는 다는 것인지 어떤한 의도로 38선에나 있을 법한 철조망을 시내 한복판에 가설하였는지 설치를 의결한 다수의 생각이 의심스러웠다.

가까운 거리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우리_2
가까운 거리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우리_2

조선 그리고 일제식민기를 거쳐 OECD에 가입하고 세계경제 10위권을 노려보는 번듯한 세계의 주역으로 성장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지만 이웃과의 정신적 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멀어진 것 같다.
아래 위 집에 살면서도 아니면 옆 집에 살면서도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면 데면데면함에 거울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요즘 현실이 이러한 이웃간의 거리를 단적으로 대변해 준다. 산책 때 보았던 아파트 울타리의 철조망은 적극적으로 이웃간의 거리를 벌여 놓으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철조망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우리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였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집사람과 함께 그 산책코스는 38선길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고 가급적이면 그 쪽 코스로는 앞으로 산책을 가지 않기로 하였다. 물론 떡볶이를 사먹으러 갈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따뜻한 여름날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동네 철조망이 걷어지고 그 자리에 예쁜 장미들이 장식되어 너무나도 예쁜 울타리가 만들어졌음 좋겠고 그 산책로를 장미길이라는 우리부부만의 애칭으로 부를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래본다.

산책, 담장, 철조망, 장미덩쿨, 임동현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