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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
수원문화재단·문화도시수원 ·(사)화성연구회, 9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주최
2023-12-11 10:19:29최종 업데이트 : 2023-12-11 10:19:2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 왼쪽부터 김영호 소장, 김세영 학예사, 정수자 시인, 한동민 관장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 왼쪽부터 김영호 소장, 김세영 학예사, 정수자 시인, 한동민 관장


(사)화성연구회는 수원문화재단 및 문화도시수원과 함께 지난 2달여간 '2023 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특강 정조 시대의 사람들'이란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1강은 단국대 김문식 교수가 '정조 - 조선의 개혁을 꿈꾼 군주'를 ▲2강은 수원화성박물관 김세영 학예사가 '채제공 - 남인의 영수, 정조의 명신'을▲3강은 연세대 김정자 교수가 '윤행임 – 정조의 총신, 뒷일을 부탁 받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4강은 한신대 김선희 교수가 '조심태 – 화성 축성의 실질적 책임자' ▲5강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해은 교수가 '김만덕 – 제주 여걸, 정조를 만나다' ▲6강은 한양대 박수밀 교수가 '이옥 – 문체반정에 맞서다' ▲7강은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가 '박제가 – 북학과 조선의 미래를 꿈꾸다' ▲8강은 한국문헌문화연구소 박철상 소장이 '장혼 – 여항 문단을 이끈 천재 시인' ▲9강은 한국병학연구소 김영호 소장이 '백동수 – 조선의 무사, 무예도보통지'를 강의하는 등 매주 1회씩 총 9강이 진행되었다. 매번 100여 명 가까운 인문학도들이 밤을 잊은 인문학 강의에 참여해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참여한 화성연구회 회원과 시민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참여한 화성연구회 회원과 시민들


지난 9일 오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전체 9강을 마무리하는 자리로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 주제의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화성연구회 부이사장인 정수자 시인의 사회로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김세영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사,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소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9강에 참여했던 인문학도들이 대거 참여해 토크콘서트장의 열기가 뜨거웠다.

사회자의 토크콘서트 소개와 패널들의 5분 발언으로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은 "정조 시대의 서명응, 서명선, 서유구, 서유린, 심환지, 정약용 등을 다루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1800년대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세도정치로 인해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정조가 꿈꾸던 시대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결국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라고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짚었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한 참가자는 "이옥 – 문체반정에 맞서다, 박제가 – 북학과 조선의 미래를 꿈꾸다, 백동수 – 조선의 무사,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다에 특별히 관심있습니다. 무예24기 전승에도 관심이 많은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무예24기 특별전시회를 할 생각이 있는지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김세영 학예사는 "내년에 보물이 된 '무예제보'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무예24기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18세기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김영호 소장은 "영조 후반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의 사신들은 북경의 유리창에서 시대의 변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으며 북학파, 남인을 중심으로 정조시대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되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론이 대두되었지만 18세기의 청나라는 절대적인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였다. 그렇지만 변화에 둔감해 19세기 민란의 시대를 맞이했고 조선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정수자 시인은 정조의 개혁정치에서 문체반정, 서체반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필자는 "정조는 확실한 서예관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서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정조는 과거의 법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문했습니다. 정조를 따르던 신하들과 유생들은 정조의 영향으로 서체의 변화를 보여 서체반정만 놓고 본다면 정조의 정책이 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실례를 남한산성의 수어장대 현판글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어장대 글씨는 1828년에서 1830년까지 화성유수를 지낸 박주수가 1836년에 쓴 것인데 기상이 넘치고 호방한 화성장대 글씨와 너무도 비슷합니다. 화성유수를 지낼 당시에 화성장대 글씨를 흠모하고 연습한 결과였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답변했다.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토크콘서트 '정조의 치세를 논하다'에 패널과 객석의 질의응답


옛 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낸다는 '법고창신'이란 말이 있다. 정조 시대에는 진경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 예술 등 전반에서 자각을 한 시대이기는 했지만, 고7 현3처럼 법고만 강조하고 창신에는 소홀한 감이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다른 토크 콘서트와는 달리 사회자, 패널과 객석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의미 있고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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