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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려는 아들을 보며
아름다운 팔불출
2010-04-05 21:58:49최종 업데이트 : 2010-04-05 21:58:49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내가 아내,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면 아내 자랑 자식 자랑을 늘어 놓는것은, 
세상에 정말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해 편을 들어주고 싸워 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또 내게 영원한 우군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의 가족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인호/'인연' 중에서

아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집에는 주중과 주말에 다녀간다.

이번 주말에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 들어오자마자 미역국 재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여자친구 생일인데 미역국을 직접 끓여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역국에 바지락이나 조갯살 등을 넣기 때문에 소고기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남자친구니까 저녁때 같이 식사하면서 선물을 준비해 주면 되는거 아니냐면서 미역국을 끓여 주는 건 가족도 아닌데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미역국을 꼭 가족이 끓여줘야 하는거냐면서 혹시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고 하면서 툴툴거리며 마트에 고기사러 간다고 나갔다.

여자친구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니까 '그렇긴 하다만...' 
혼자서 좀 뻘줌해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마트에 있다며 아들이 미역국끓인다고 해서 고기를 사러 들어 왔다고 한다.
'오...마이  가뜨...'
이거 뭔가 이상스런 기분이 든다.

남편은 고기와 미역을 사다가 아들에게 주면서 둘 다 일단 물에 담그라고 했다.
아들은 미역만 물에 담그고 고기는 그냥 넣는거 아니냐고 하였고, 남편은 핏물을 빼야 한다고 했다.
둘이서 죽이 맞아서 핏물이 다 빠졌는지 확인해라, 볶아라....그러면서 주방에서 고기를 볶는 아들 옆에 딱 붙어서 미역국 만드는 것을 전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여자친구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려는 아들을 보며_1
여자친구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려는 아들을 보며_1

한참동안 복닥거리더니 미역국을 다 완성하고나서 어디에 담아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선물이니까 어느정도 포장이 필요한 거라며 보온도시락통을 꺼내 주었다.
아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딱 좋다 엄마~!" 그러면서 낼름 받아갔다.

"너는 3대 팔불출"이라며 놀렸더니 "엄마는 팔불출 남편을 좋아하면서 그러냐"는 둥 아들은 오히려 나를 더 놀리는 것이었다.
남편은 밖에서 별 자랑거리도 없는 나와 아들을 자랑하는 것 같다.
나는 너무 민망하다며 그런 자랑은 하지 않는거라고 하여도 남편은 술만 마시면 우리자랑을 늘어 놓는다고 한다.

우리가 늘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떨때는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꽥꽥지르면서 부부싸움을 할 때도 있고, 서로 미워서 말을 며칠씩 안 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그런 나의 흉허물은 모두 감추어 주고 좋은 이야기만 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 또한 혹여 남편의 못마땅한 점을 발견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늘어 놓지 않는다. 이미 우린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고, 남편의 허물이 곧 나의 허물이니 감싸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찌보면 심각한 팔불출이다. 어디를 가든, 무슨 글은 쓰든 아내자랑, 자식자랑을 늘어 놓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족 사랑에 팔불출이란 없다. 가족은 나의 영원한 동지이자 우군이자 나의 어깨뼈이며, 나의 척추와 내 머리에서 자라나는 검은 머리카락이자 나의 눈동자, 내 몸을 이루는 그 모든 기관이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가 때로 아프다고 그 다리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몸이 살아가다 보면 서로를 마음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우리 가족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팔불출이 될 것이다.
최인호/'인연' 중에서

우리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고, 또 아니면 어떤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미역국을 끓여 주고 싶어하는 아들의 사랑이 느껴져서 우리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들도 아름다운 팔불출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흐뭇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서로 사랑하는 일을 감춤없이 따근따끈하게 데운 선물이 지금쯤 전해졌을 것이다. 
나도 그 시간을 축하하며 지금같은 사랑의 열정이 서로 식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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