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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삶이되기를
봄맞이 대청소
2010-04-14 09:30:41최종 업데이트 : 2010-04-14 09:30:41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삶이되기를 _1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삶이되기를 _1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내는 것처럼 이름은 그 사람을, 혹은 그 물건을 상징한다. 우선, 그 이름값을 하려면 어느자리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자리도 못찾고 이름값도 못하는 채, 정돈되지 않은 편린에 갇혀서 허우적일 때가 있다. 나도 한 눈을 팔고 걷다가 발목을 삐는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한동안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문득 꿈에서 깬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 대청소를 시작하였다. 서랍장 등 물건의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물건을 들어 낼 때마다  보이는 먼지를 닦기 시작하다가, 커텐과 침구를 세탁하고 두터운 카펫을 들어내고 샤방샤방한 퀼트러그를 깔아 보았다.

그랬더니 열린 창으로 넘실넘실 들어오는 봄바람과 세제냄새가 섞여서 코끝에 닿자마자 콧구멍이 뻥 뚫릴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라디오에서는 흥겨운 우리가락의 거문고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니 몸이 절로 장단에 맞추어져서 춤사위라도 벌이고 싶을 정도로 청소하는 것이 흥에 겨웠다.

나는 집안의 물건은 장소를 정해서 제자리를 정해놓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그 물건들은 그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말없이 해낸다.
건망증 때문에 생긴 버릇이기도 하지만 워낙 있어야 할 곳을 정해 놓으면 물건을 찾을 때 소비하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열쇠를 놓는 위치, 핸드폰이나 돋보기를 놓는 위치도 정해져 있으며, 사우나에 갈 때도 이미 목욕 준비가 다 되어있는 가방이 있다. 
이번 대청소 할 때는 잠깐이라도 훌쩍 떠날 때 들고 갈 가방을 하나 정하여서 커피, 라면, 과도, 컵 등을 챙겨 놓았는데,그 가방을 보기만해도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지난겨울 3개월 가량, 발목을 다쳐서 시원하게 대청소 한 번 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가구처럼 쳐박혀 있다가 식사때나 되어서야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일 빼고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식탁 아래 깔던 작은 카펫을 밟아서 빨려고 걷어 놓은 상태에서 발을 다쳤기 때문에, 둘둘 말아서 한쪽 구석에 세워놓은 그 녀석만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발목 낫기만 해봐라, 내 저것부터 밟아서 빨아버릴테니..' 하고 벼르기를 석달 열흘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달 복달하며 '발목아~ 빨랑 나아라.' 는 주문을 외울 정도였는데 한달이 지나 두달, 석달이 될 즈음에는 발을 절룩이는 것이 익숙해 졌다.

누구누구의 아내이며, 엄마이며, 며느리이며, 딸이고 누나인 지금의 자리에서 그간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살던 그 묵직한 불쾌감에서 벗어나 지금은 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봄이라는 매력적인 계절의 싸인이 아마도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

하루종일 총총거리며 청소하고 제 자리에 놓은 물건들이 밤에 잠자고나서 아침이되면 모두 헝클어져서 뒤죽박죽인 것처럼 봄에 정리해 놓은 물건도 여름이 되면 모두 헝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마음도 서서히 궤도를 벗어나 이탈을 일삼을지도 모른다.
모든게 제 자리에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달을 제자리에 서 있으라고 하는 것과도 같은 무모한 바램이 아닌가.
우리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조금씩은 삐뚤비뚤하게, 아슬아슬하게 선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제자리를 지켜내며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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