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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
2010-04-12 20:13:22최종 업데이트 : 2010-04-12 20:13:22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_1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_1
'슬픈 외국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태엽감는 새의 집필을 위하여 미국에서 4년 반의 체험에서 얻은 자전적인 신변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글의 내용 중에서 사내아이의 동심을 언제나 간직하고 싶다,는 부분에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이발소에 가며,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는것이 그가 그린 사내아이의 이미지이다.

여기서 동심은 덜 떨어지고 사회화 되지 못한 부분이 아닌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어 있으면서 어떤 부분에서 사내아이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사내아이뿐만 아니라 동심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이다.
"소설가는 모두에게 쉽게 이해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소설의 세계에서는 이해에 이해를 거듭해서 얻어진 이해 보다는 오해에 오해를 거듭해서 얻어진 이해 쪽이 때때로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라는게 하루키의 변이다.

독자들의 오해를 받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한 일이다.
소설가 공지영도 '봉순이 언니'가 히트한 이후 나돌던 소문으로 인해 한때 절필한 적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이야 오해에 오해를 거듭해서 얻어진 이해로,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 여성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문학도들 또한, 과제물로 낸 단편소설 한 편 때문에 서로에게 꽂히는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의 초기작품은 거의가 자전적인 이야기로 출발하여 점점 주변에서 작품속의 인물을 채집 해 나가면서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주로 경험에 의한 신변잡기를  쓰면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글을 가끔 포장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 신변에 대해 쓸데없는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글은 글일 뿐이기 때문에 그 쓸데없는 상상력을 굳이 구속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가나 글쓰는 사람은 이런 오해에 노출되어 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삶이 작품마다 내용속에 켜켜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여성작가 중에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토대로 작품을 출간하여서 논픽션을 선호하는 독자층으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해를 풀기는 해야 하는데 일일이 변명 하기가 어려운 것은 일반인들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복잡한 관계속에 존재하려면 크고 작은 오해를 받기 마련이다.
변명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마련되면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만인 것이다.

이해를 얻기 위한 대화로 시작한 것이 변명으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고자질 했을 때의 기분이 드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일일이 변명하는게 기분이 나쁘다면 달달이, 아니면 연년이 변명하는 건....

슬픈외국어, 무라카미하루키, 공지역, 소설,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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