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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보낸 하루
법정스님의 맑은 말씀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0-03-26 20:09:29최종 업데이트 : 2010-03-26 20:09:29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뜻하지 않은 중학교 동무의 전화를 받고 무작정 봄나들이 장소를 길상사로 정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약속이라 바람도 불고 갑자기 영하로 내려가 추위가 다시 돌아왔다는 아침뉴스를 듣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 드라마와 따뜻하고 포근한 집안에서 여유를 포기하고 집을 나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고 안락함을 떨치고 잘 나왔구나 싶었다. 집 앞에서 탄 버스는 50분 만에 사당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철역 한성대입구까지 30분이 더 소요되었다.         

점심을 분식으로 간단하게 먹고 ( 나중에 알았는데 경내에 식당이 있어서 식사 할 수 있단다) 택시로 가니 기본요금이 나왔다.  
택시로 올라가면서 날씨만 조금 도와줬어도 걸어가도 참 좋을 길이라고 생각했다.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1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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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2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2

맑고 향기로운 도량 '길상사'에는 궂은 일기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끊이지 않았다. 책 속에서만 상상하고 가서 설법을 듣던 도량에 직접 눈으로 보니 또 다른 감회가 있었다. 
사찰이지만 사찰 같지 않은 곳이었다. 아마 단청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요정이었던 곳이 시주에 의해 도량으로 변모했다는 짤막한 내막을 모르지는 않지만 과거의 풍경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설법전을 지나 양지쪽 담벼락에 축축 느러뜨린 가지에 봄을 맞이한다는 영춘화의 만개가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꼭 개나리 닮았다. 옛날 장원급제한 이들에게 내린 어사화가 바로 이 꽃이고 보니 행운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곳곳에 크지 않은 나무에 법정스님의 말씀이 있다. 책에서 자주 접하던 친근한 말씀이다. 생활이 참선이고 명상이 곧 생활이었던 맑음을 또 여기서도 느껴졌다. 
법고루를 지나 극락전에 모셔진 스님의 영정 앞에 삼배를 올리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차와 키위 두 조각 과자 두 개가 촛불 앞에 있다.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에서 더 큰 슬픔 가슴에 와 닿았다.


처음 대하는 곳이어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곳이 있다. 침묵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진 명상하는 곳이다. 한정 없이 침묵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심란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밉상맞은 황사 섞인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찰에서 보기 드물게 경내에 찻집이 있다. 동무와 창 밖 풍경이 완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스스스 옷 속으로 파고드는 철없는 날카로운 바람에 진저리를 쳤는데 온돌 바닥이 뜨끈뜨끈하여 너무너무 행복했다. 진하게 우러난 대추차를 마시니 얼었던 몸이 사그르 녹는 듯 했다.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3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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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4
길상사에서 보낸 하루_4

몇 년 만에 만난 동무는 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깡'으로 어려운 일도 잘 헤쳐 나가던 아이였는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은 몇 분 동안의 담소로 어지간히는 좁혀졌다. 건강에 자꾸 빨간불이 켜지자 이제는 무엇에고 의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신앙을 갖지 못하고 겁도 없이 살아온 것 같다"는 얘기가 남의 것이 아니었다. 

나오는 길에 지장전 일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다. 스님의 책이 절판됨이 알려지자 신자들이 뒤늦게 스님의 책을 읽으려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한가한 풍경이다.  
깨끗하게 잘 정돈 된 열람실과 분리 되지 않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늑하게 보였다. 책보기 참 좋은 곳이다. 저절로 지식이 머릿속으로 침투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길상사에는 특정 종교인을 위한 곳이라기 보단 사랑방 같은 푸근함이 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법정스님의 골수팬인 다른 친구와 다시 한 번 오게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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