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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에 대한 연정(戀情)
2010-03-15 07:42:11최종 업데이트 : 2010-03-15 07:42:11 작성자 : 시민기자   임동현

막 대학생이 되었던 98년도. 
새내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양쪽 볼엔 젊음의 상징인 여드름이 가득 피어 있었고,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했었던 삐삐가 고이 주머니에 모셔져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바지주머니에는 삐삐가 오면 즉시 연락하기 위한 공중전화 카드가 지갑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삐삣삐삐삐삐~~~"
신나게 울려대는 삐삐를 진정시키며 누구나가 공중전화로 달려가곤 하였다. 자신의 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상대방의 삐삐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는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는 최신식의 디지털 기기가 바로 삐삐였다. 그리고 실가는 곳에 바늘간다는 말과 딱 맞아 떨어지게 삐삐가는 곳에는 항상 공중전화가 있었다. 

1평도 되지 않는 공중전화 부스에서의 통화는 항상 사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였다.
벚꽃이 만개하는 춘삼월에는 왠지 어디선가 사랑이 넘어 들어올 것만 같아 전화를 하는 도중 옆 부스에 예쁜 처자가 들어오지는 않는지 살피게 되었고, 꽃들이 조금씩 시들어 장마철이 다가 올 즈음이면 갑작스레 찾아온 소나기를 피하려 들어간 공중전화 부스안에서 잠시 머리를 말리며 집으로 전화를 하거나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의 통화를 하곤 애꿎은 날씨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울적한 마음에 들어간 부스안에서 옛사랑의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곤 한 때 익숙하게 누르던 그 번호를 눌렀다가 수화기를 내려놓기를 수 차례 하기도 하고, 엄동설한의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가며 집으로 전화를 하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하기도 하고 약속장소에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최신식의 삐삐와 공중전화 콤비는 휴대전화의 등장과 함께 쓸쓸히 내리막의 인생을 걷는다.
음성을 남기고 다시 음성을 기다리던 것과는 달리 바로 통화가 이루어져 효율성 측면에서 무척이나 향상된 기능을 외면할 자 없었고 우리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신식문물에 구식문물이 밀려나듯 삐삐와 공중전화는 퇴출되었다. 빠르게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하지만 휴대전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턱대고 다 없앨 수도 없었던 공중전화는 나라의 살림을 통하여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고 지금은 마치 앤틱소품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비춰진다.
간만에 밤거리를 산책하다 목도한 쓸쓸하게 서있는 저 공중전화 부스...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에 대한 연정(戀情) _1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에 대한 연정(戀情) _1
 
아련하고도 애틋한 연민이 배어나온다. 앞사람이 얼른 나오기를 기다리며 다급한 마음으로 삐삐를 바라보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늙으면 쓸쓸해 지는 듯한 사회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하여 진 것이리라. 

앞으로 예전만큼의 효용은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지켜줄 수 있게 그 자리 그 곳에서 오랫동안 있어주기를 바란다. 사라져 가는 인간미 넘치는 것들에 대한 연정은 영원할 것이니까.

공중전화, 인간미, 삐삐, 아날로그,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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