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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
융건능을 다녀와서
2010-03-15 11:48:20최종 업데이트 : 2010-03-15 11:48:2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은 날이었다. 날카롭던 바람의 끝은 어느새 부드러운 깃털로 바뀌었고 상큼하게 느껴진 아침이었다. 게으름으로 오전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좋은 휴일 아침 서둘러 집에서 벗어났다. 화창하고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딱 좋았다. 

한참을 달려도 끝나지 않을 아파트 숲이 사라지고 조금씩 드러나 보이는 들녘은 속살을 드러낸 채로 조용히 서 있었다. 회색의 괴물덩어리로 우뚝 서 있는 건물들도 훈훈한 바람에 조금씩 자라 오늘따라 키가 더 높아 보였다. 아직 들일을 시작되지 않은 호젓한 논밭에는 나물 캐는 아낙들이 풍경화의 밑그림이 되어 주고 있었다.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1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1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2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2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자주 왔던 능에 오늘은 옆지기와 달랑 둘이 왔다. 언제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향나무였다. 140년의 수령을 지니고도 해마다 새 잎을 보여주는 향나무는 세상살이 고단함과 새로운 희망을 함께 보여 주는 것 같아서 푸근함을 느꼈다. 
그러나 주차장 옆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능에 대한 슬픈 내력을 잘 알기라도 한 듯 지난 세월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자 양 옆쪽에 진달래가 봉우리를 터뜨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따뜻함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긋봉긋 피어나는 봉우리가 금방이라도 터 질것 같아 향기들 들어 보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향은 잘 들리지 않았다. 올해 처음 마주한 진달래다. 잎사귀도 없이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하늘하늘 봄바람에 날리는 계집아이의 원피스를 닮았다. 

매번 융릉을 먼저 한 발길을 오른쪽 건릉으로 향했다. 하늘을 가리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높이높이 키 자랑을 했다. 신록의 계절이 오면 무성한 잎사귀로 키를 덮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사그락사그락 바람의 움직임을 한눈으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었던 땅들이 해동 되면서 지면은 부슬부슬 한껏 부드러워 졌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소곤소곤 귓속말로 안부를 전했다. 

정조대왕과 효의왕후가 잠들어 있는 건릉은 조용하고 편안해 보였다. 

작년과 올해는 유독 많이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벌써 잊혀져가는 사람이 있고 아직도 마음을 도려내듯 고통의 아픔이 그대로 있는 사람도 있다. 
능에 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평생 동안 부자지간의 정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을 절절한 아픔이 충분히 느껴졌다. 시어머니 보다야 못하겠지만 20년의 세월을 외롭게 살았을 아내의 마음도 읽게 된다. 

융릉을 이어주는 숲속 길을 산책하기가 좋다.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이기도 한 소로를 걸었다. 외나무다리 밑에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스르륵 통나무 더미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 왔을 때에는 청설모가 여럿 보였는데 다행이다 . 다람쥐가 더 반갑다.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3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3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4
아픔보다 더 성숙해지자_4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묘인 융릉 입구에 가까이 하자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도 걷기에 좋고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도 되겠다. 
혜경궁홍씨는 사도세자를 그리 가슴 아프게 보내고 반세기를 어찌 살았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잔디밭에서 티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은 아픔 없는 세상에서 살 것이다. 

 이곳에 오면서 나도 모르게 말 수가 줄어들었다. 옆에 있는 옆지기도 말 없다. 돌아가는 마음은 올 때 마음보다 많이 차분해져 있다. 
마른 갈잎 사이로 해님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 위에서 따라오는 해님이 자꾸 가려진 하늘이 쳐다보게 했다. "이제는 모두 다 좋을 거야" 하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융건능, 참나무, 정조, 사도세자,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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