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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가 제철이랍니다
대포항에 다녀와서
2010-03-22 10:18:43최종 업데이트 : 2010-03-22 10:18:43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하늘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무게로 어두컴컴한 바깥 날씨는 길 떠날 준비한 여행자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망설임을 갖다 주었다. 
미리 계획에 없던 여행길 바깥에서 마주 할 예고되지 않은 위험에 마음이 쓰이고 남기고 갈 작은아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큰 아이 마중 못가 주는 것도 마음 쓰이는 날이었다. 
하지만 황토색으로 변했다 쓸려가는 황사의 풍경보다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였을까 준비 없이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20년이 가까워지도록 남편과 오롯이 목적 없이 둘이 떠나는 여행이 처음이라 들뜬 기분도 들고 오래도록 친하게 지낸 친구 같은 편안한 맘으로 아이들 걱정, 집 걱정은 이내 잊어버리고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 취했다. 
영동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는 풍경들은 아직도 하얀 눈 쌓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 위의 눈들이 가끔씩 푸스슥 거리며 날리는 것이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작심 없이 가는 여행지는 새로운 곳 보다 익숙한 곳을 가게 마련이다. 지난 가을까지도 완공되지 않았던 속초로 가는 도로는 하조대까지 길이 뚫려 있어서 2시간 30분이 못 미치는 시간에 당도했다. 
주말이면 외지인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포항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황사의 영향으로 여행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텅 빈 횟집 골목은 겨울바람보다 더 날카롭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되돌아 나오면서 30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가게에서 새우튀김을 샀다. 다행이 기다리는 줄이 짧다. 노릇노릇 바삭한 새우의 맛과 향은 일품이었다. 매번 올 때마다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감히 새우튀김을 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줄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대포항으로 다시 갔다. 
마침 조업을 나갔던 배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바구니에 그득그득 찬 물고기는 송어였다. 대부분 어른 팔뚝보다 더 튼실해 보였다. 팔딸팔딱 꼬리지느러미를 움직이는 힘이 좋아 대야에 옮길 때마다 어부가 바가지로 툭툭 머리를 쳤다. 

배가 들어온 항구에는 하늘 낮게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연신 높이 올랐다 내려왔다 반복했다. 손에 잡힐 듯 많은 갈매기는 항구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각각의 대야에 담고서 송어는 중간상인에게  경매 되어졌다. 아주머니의 억센 사투리는 낮선 외지인에게는 싸움같이 보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중개인의 수신호가 끝나고 송어의 배당이 끝났다. 

송어가 제철이랍니다_1
송어가 제철이랍니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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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가 제철이랍니다_3
송어가 제철이랍니다_3
어렸을 때부터 회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맛있게 먹는 집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어른의 팔뚝보다 더 큰 송어 한 마리에 만원이다. 두 마리를 회를 떴다. 도시락에 담으니 네 개의 양이 되었다. 맛과 양에 완전 만족이다.  

생선 조림을 위한 뽀듯뽀듯 반건조 된 송어도 샀다. 반건조 된 송어는 찜 솥에 올려 쪄서 먹어도 좋고 튀김옷을 입혀서 튀기거나 버터를 발라 고소하게 구워먹으면 생선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송어 조림은 작은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데 무를 깔고 갖은 재료로 양념을 한 양념장을 얹어서 먹으면 밥 한공기로는 모자랄 정도이다.

요즘이 송어가 많이 잡힌단다. 배를 갈라 다듬어 놓은 물기 마르지 않은 송어 열 마리에 만원이다. 흥정에 따라 덤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객이라면 뽀듯하게 말린 반건조 된 생선이 운반에도 용이하고 상할 염려가 덜하겠다. 

물고기 구경을 좋아하여 수산시장에서 기웃거리기를 잘한다. 자연스레 아이들도 외할머니 댁에 갈 때면 오일장 날짜에 맞추려한다. 
순전히 수학여행에서 돌아올 형의 귀가에 '마중 올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형이 쓸쓸하겠냐?'는 생각에 따라나서지 못한 작은아이와 며칠 동안 집 떠나 여행에서 돌아 온 아이에게 맛있게 송어회를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는 떠날 때의 찌뿌뚱하던 마음이 다 가셨다. 

바람 쐬고 싶다는 말에 "여기도 바람 많이 분다."고 멋없이 한마디 던지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남편을 따라 나서길 참 잘했다. 
바람이야 다 같은 바람이겠지만 짧은 여행이라도 타지에서 가져온 바람으로 한동안은 마음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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