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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
추억이 있어 아름답다
2010-03-10 10:22:35최종 업데이트 : 2010-03-10 10:22:3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설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_1
설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_1

"3월인데 뭔 일이라니?" 
머리에 눈을 뒤집어 쓴 채 툭툭 털어내면서 하는 옆 동 사는 친구의 말이다.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며칠 동안 봄옷으로 얇게 입고 다녀도 야외 활동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는데 이젠 '도루묵'이 되어 두꺼운 겨울옷을 다시 입어야 할 지경이다. 학교에서도 교복위에 겉옷을 입지 말라는 얘기도 있었고 보온에 취약한 교복으론 통학시간 동안은 학생들은 좀 추울 것 같다. 

영동지방에는 가히 겨울의 중심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관령은 1미터 조금 안 되는 눈이 내렸고 삼척에는 양은 그리 많지 많지만 벌써 5일째 눈이 내리다 녹고 또 내리는 중이란다. 통행에 많이 불편하고 눈 치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한겨울처럼 바람이 없어 쌓인 눈도 금방 녹는다니 그중 다행이다. 

수원은 절기에 맞게 계절과 동행한다. 겨울의 문턱을 시작하는 12월에는 첫눈이 내리고 또 입춘이 지나면 조금 멀리 있음에도 봄을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 삼척은 그렇지 않다. 첫눈이 12월이 다가고 운 좋으면 성탄절 전후로 첫눈을 볼 수 있고 남쪽 지방에서는 한창 꽃 놀음 할 때 4월에도 눈이 내렸다. 

어린 시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외갓집이 있어서 제사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에는 엄마와 함께 저녁에 갔다가 아침에 바로 등교를 하곤 했었다. 

그날도 외가에 제사가 있는 날이어서 부모님과 함께 전날 책가방을 챙겨서 갔다. 새 학년이 되었고 병아리 같은 신입생들이 가슴이 손수건을 달고 부모님의 배웅을 끝내고 조금씩 학교에 적응 할 시기였다. 
외갓집에서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하얗게 눈이 내렸다. 봄눈이었음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등굣길이 되었다. 2킬로미터가 넘은 곳을 친구들과 눈 장난을 하며 학교에 도착하고 보면 천으로 된 운동화는 젖어서 양말까지 축축해져 있기가 일쑤였다. 

어떤 아이는 여분의 양말을 가지고 왔지만 대부분 젖어 축축한 양말을 신고 신래화도 없는 맨발로 나무로 된 교실바닥과 복도는 오 갈 때 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운 좋은 날이면 장작으로 피우는 난로에 양말과 발을 말릴 수 있었지만 춥기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에 옥수수를 달달 볶아 끓인 물을 호호 거리며 언 손으로 따근따끈해진 컵을 감싸 쥐고 그래도 좋아라  해죽해죽 거렸었다. 

봄에 내리는 눈은 금방 녹았다. 무릎까지 올라오게 밤새 내린 눈도 아침에 해가 뜨면 스르르 녹았다. 그래서 한겨울처럼 썰매 터를 만들어 놓아도 얼지 않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움푹움푹 파였다. 

또 보리밭이 많았던 우리 동네는 겨울 동안 빈 밭으로 남아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밭주인이 보지 않는 시간을 틈타서 썰매를 탔는데 멀리서 주인의 고함 소리가 들리면 얼른 도망가야 혼나지 않았다. 주인이 들어가고 나면 흩어졌던 아이들이 다시 몰려와 썰매를 탔다. 비료포대에 보릿짚을 넣어서 푹신하게 만든 썰매를 혼자서도 타고 포대를 이어서 기차처럼 길게 타기도 했다.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끊어져서 맨 옷으로 구르는 아이도 있고 거꾸로 내려가 뒤로 쳐박히는 일도 부지지 수였다. 날씨가 점점 기온이 올라가고 썰매의 레일도 군데군데 흙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정말 마지막인가 싶어 주변에 있는 눈을 떠서 보수하면서 탔던 기억이 난다. 

살구나무가 많았던 마을엔 한창 개화시기에 있던 살구꽃이 얼어서 떨어졌던 시기도 그쯤이었다. 살구나무가 집집마다 텃밭 둘레는 물론이고 집을 울타리처럼 싸고 있어서 꽃이 만개 할 때에는 엽서에 나오는 그림처럼 눈부신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다홍색의 살구가 익으면 보자기에 싸 선생님께도 갖다드리면 참 맛있게 드셨었는데...

설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_2
설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_2

아파트 지붕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기온이 높아서 고드름은 달리지 않았다. 이것이 올겨울의 마지막 눈이라고 하니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이젠 따뜻한 봄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지붕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겨울을 아쉬워하는 눈물 같기도 하다.

설경, , 추억,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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