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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은 들뜨게 한다
2010-03-10 16:07:25최종 업데이트 : 2010-03-10 16:07:2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베란다에서 거실 창문 쪽에 있는 제라륨이 피기 시작했다. 꽃대가 올라오는 기척을 감지한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얼마나 키가 컸는지 잎사귀를 들춰보고 바깥에 나갔다가도 또 얼마나 자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따뜻한 거실에 있을 때에는 자라는 속도로 빠르고 또 개화하여 낙화하기까지 순식간에 일어나 붉은 꽃잎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무심한 식구들은 언제 꽃이 피었는가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거실에서 잘 볼 수 있게 베란다 안쪽으로 옮겼던 것은 꽃을 오래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꽃대가 만들어지고 자라는데도 한 달 넘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꽃봉오리가 뾰족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언제쯤 꽃을 볼 수 있을까 집안에서 일을 하다가도 자꾸 시선이 갔다. 집안일을 마치고 소파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볼 때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을 택했었고 바깥 풍경보다는 오직 제라륨에만 시선이 고정되었다. 

짝사랑은 들뜨게 한다_2
짝사랑은 들뜨게 한다_2

얼마 전 만개했던 군자란은 꽃송이가 열 개 넘어 부케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그곳에 시선이 잘 가지 않는다. 10년 넘게 함께한 군자란이 주인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줄 알면 조금 서운 할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이의 나이보다 훨씬 많은 해를 거르지 않고 예쁜 꽃을 피웠는데 핑계라면 너무 오랫동안 봐서 식상해서일까? 주인의 마음을 알았다면 분하고 서러워서 가출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의 관계도 오래도록 처음 마음으로 가지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불꽃처럼 사랑하여 함께 사는 부부들은 물론이고 친구사이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들 사이에도 어느새 10년 지기, 20년 지기가 생겨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 마음과는 조금씩 변한다. 
세상살이의 중간 있어 의무와 책임이 무겁다.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느라 첫 마음을 지키고 돌이켜 볼 여력이 없다. 흐린 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면서 옛 추억에 잠겨 잠깐 일탈을 꿈꾸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첫마음, 첫정을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 각박하고 빠르게 지나간다. 

검은 바탕의 하얀칼라를 한 중학교 앨범을 오랜만에 열어 보았다. 아이 티가 다 벗겨지지 않은  숙녀라기엔 좀 더 어른스러워야 했다. 
졸업 앨범이라야 천편일률적으로 정형화 되어 있다. 꽃밭에서 무리를 지어 찍거나 운동장 잔디밭에서 엎드려서 모양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귀 밑 3센티를 강조했던 너나 할 것 없이 촌스러운 머리모양이다. 

까까머리를 한 남자 아이들도 대부분 교복이 헐렁해 형이나 삼촌의 것을 빌려 입은 듯 옷태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키도 그렇게 작은지 탱글탱글 말도 엄청 안 듣게 생긴 장난기 많은 모습이다.  

같은 반이 아닌 남자아이들은 물론이고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 친구들도 몇은 얼굴은 머리에서 맴맴 도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서글픈 일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추억도 함께 잊혀 진다는 것이다. 쓸쓸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조금은 들뜨게 한다. 
해가 나지 않은 날에는 태양빛이 모자랄까 마음 쓰이고 또 어제 오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면 집안으로 들여놓고 싶은 유혹을 갖는다. 
집안에 들여 놓고 싶은데 지난겨울  아픈 기억이 있다. 꽃 몽우리가 올라오는 시기에 기온의 변화가 심하여 베란다에 있던 것을 따뜻한 거실에 옮겨 놓았더니 꽃을 피기도 전에 하나 둘 떨어져 결국 꽃이 모두 말라죽는 일이 있었다. 이젠 봄이다. 그 정도는 참아 이겨내야지 응원을 보내다가도 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또 고개가 돌아간다. 

짝사랑은 들뜨게 한다_1
짝사랑은 들뜨게 한다_1

기온이 올라가면서 잎사귀도 푸르고 물을 잔뜩 모금은 줄기에는 청년의 근육처럼 힘이 넘쳐 보인다. 몽글몽글 꽃송이가 다 필 때까지 붉은 꽃잎처럼 일편단심 짝사랑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짝사랑, 베란다, 제라륨,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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