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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감동한다
도시락 이야기
2010-03-06 11:09:39최종 업데이트 : 2010-03-06 11:09:39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시골에선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긴 겨울방학 동안 동면했던 아이들도 개학을 하고 또 본격적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학교생활에도 적응하고 학업에도 정진해야  할 때이다. 

한 학년이 올라간 큰 아이는 올해부터는 노는 토요일도 없고 토요일에도 저녁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내심 차라리 잘 되었다는 엄마 마음이 아들에게 들통이 났다. 
"엄마는 차라리 밤까지 야자하는 것이  더 좋죠?" 한다. 그렇다. 주말에 헤이해지기 쉬운 날이다. 학원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평소에 안 보던 TV 앞도 기웃거리게 되고  쉰다는 개념보다는 허비하는 생각이 더 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에는 급식이 되지 않는단다. 순간적으로 아이의 수고 보다 도시락 챙길 걱정이 앞섰다. 

작은 것에 감동한다_1
작은 것에 감동한다_1

도시락을 직접 챙긴 때가 까마득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서 현장학습 갈 때 김밥을 말아 준 기억 밖에 없다. 초등학교에서 현장 학습을 갈 때에도 대부분 현장 식당을 이용하거나 학급전체에서 도시락을 준비했었고 운동회 날도 급식으로 점심을 먹었던 터라 변변한 도시락도 없다. 
그런데 당장 내일 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는데 자정이 넘어 돌아온 아이의 소식에 머리를 맞은 듯 잠깐 동안 띵 했다.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눈치 빠른 아이는 " 신경 쓰이면 안 싸도 돼요. 내일은 시켜 먹을께요."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학교에서 점심을 시켜 먹는다니?'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서인지 도시락을 직접 챙겨오는 학생들보다 급식하지 않은 날에는 학교에서 시켜먹거나 매점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자장면도 배달해주고 떡볶이와 쫄면도 배달해준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처음부터 매점에서 파는 라면으로 때우랄 수가 없었다. 저는 자의든 타의든 공부 하겠다고 토요일까지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데 도시락도 못 준비해서야 엄마자격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준비 없이 챙긴 도시락이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도시락 바닥에 계란 후라이를 깔고 밥을 떴다. 예전에 남편이 제일 부러운 도시락 풍경이었다고 했다. 
달걀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에는 계란 후라이가 최고의 반찬이었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큰아이도 계란으로 된 요리는 무엇이든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설 명절에 친정 갔을 때 친정 엄마가 주셨던 떡갈비를 노릇노릇 익혀서 담았더니 군침이 넘어 갈 정도로 냄새가 아주 좋았다.  
항상 비치되어 있는 조미 김과 명태 살이 씹히는 외할머니표 깍두기를 담고 보니 말이 도시락이지 집에서 먹는 반찬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접시에 두고 먹는 것을 사각의 통에 담아 먹는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다. 쌀뜨물을 넣고 누룽지와 끓인 구수한 숭늉까지 마시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겠지? 
생각보다 통이 많은 것을 보고 흡족한 얼굴로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김 하나만 있어도 밥 다 먹겠는데요."한다. 

별것도 아닌 도시락에 감동하는 아이가 고마워서 머리하나 만큼 더 큰 아이를 안고 어느새 벌써 철이 다 들었구나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번뿐인 도시락 싸는 즐거움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새롭게 가진다. 좋은 마음으로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빈 통으로 가져오는 것이 제일 큰 보답이겠지. 큰 아이와 새로운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어서 오늘이 참으로 고맙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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