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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
영화 '식객-김치전쟁'을 보고
2010-02-08 10:12:49최종 업데이트 : 2010-02-08 10:12:49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1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1
엄마의 맛이란 도대체 어떤 맛을 엄마의 맛이라고 단정 지어 말 할 수 있을까? 
영화 '식객'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맛이 참 된 엄마의 맛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엄마의 맛이라는 것이 과연 맛있기만 해서 되는 것일까? 
맛이란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감각인데 엄마의 맛은 마음까지 움직인다 하니 더 이상의 찬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성찬과 장은의 요리 실력의 대결구도로 전개되었다. 
장은은 기생이었던 엄마의 밑에서 변변한 친구도 없이 기생 딸이란 모멸과 멸시의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더럽고 추잡하다 생각했던 과거 흔적들을 잊기 위해 여자는 주방장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실력으로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얼굴에서 옛 시간들을 지우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춘양각'을 없애는 데는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성찬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엄마가 일하는 염전에서 바람개비를 돌리면서 염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성찬을 사랑하지만 염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아들을 두고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비명소리도 듣지 못하고 근처에서 일하던 다른 사람들이 건져주는 일이 있었다. 
그 후 엄마는 '춘양각'에 성찬을 맞기고 암으로  투병하다가 의학기술로는 증명할 수 없는 어떤 집념의 끈으로 연명하다가 성찬과의 재회를 하고 다시 만나지 못할 세상으로 떠났다. 

성찬과 장은은 엄마에 대해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언제고 무엇이든 승리함이 장은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면 성찬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1편에서의 가지각색의 다양한 요리가 보는 사람들의 미각을 돋구었다면 이번에는  상상 할 수도 없이 많은 김치가 입을 딱 벌리게 했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요리에 김치의 종주국임을 다시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김치에 대한 사랑이 마구 솟구쳤다. 

지난 김장 하던 때가 생각났다. 
엄마는 "수요일 김장 할란다. 혹시 시간 되면 와라. 시간 안되면 안와도 된다."라고 했다. 
도대체 오라는 건지 오지 말라는 건지 항상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론 없는 말씀을 하셨다. 운을 이렇게 떼 놓으면 김장하러 내려 올 걸 아신 것이다. 항상 때가 되면 딸이 셋이 있어도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둘째인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항상 상냥하게 그러겠노라고 하지는 못했다.  어떤 때는 짜증부리고 또 어떤 때는 가까이 있는 언니를 부르지 않은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2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2

친정에는 시집 장가 다 간 자식들의 김장까지도 다 하기 때문에 항상 배추김치만 하더라도 한 접 이상 했다. 
김장거리가 잘 되는 해에는 양이 더 늘어났다. 밭에서 배추를 뽑아 마당의 수돗가까지 옮기는데도 손수레도 십 수 번을 해야 했다.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오랜만의 노동이었다. 엉금엉금 기어 다닐 정도로 기력을 다 써버렸지만 저녁을 먹곤 또 명태를 손도끼로 다지는 일을 해야 했다. 밤늦도록 명태를 다 다지고 나면 손에는 수포가 생기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배추에 넣을 소를  다진 명태와 엿기름을 넣어 갖은 양념을 섞어 하룻밤 따뜻한 아랫목에서 발효를 푹 시켜야 했다. 잠자기 전에 다시 배추를 골고루 절여지게 뒤적거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파, 갓 등을 발효시킨 양념에 버무려서 소를 만들고 절여진 배추를 휑구었다. 명태를 넣은 김장김치는 한겨울에 먹으면 명태 살이 오도독 씹히어 쫀득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아삭거리는 배추의 싱싱함과 입안에 퍼지는 시원하고 구수한 맛 때문에 겨울에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이런 맛있는 김장을 맛 볼 수 있을까? 
친정에서 김장을 갖다먹기 시작한 것은 몇 해 되지 않았다. 복 있게도 주변에 사는 지인들이 김장 할 때마다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줬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 김장하는 것에도 힘이 부치고 도와드리면서 엄마표 김치를 갖다먹게 되었는데 도시에서 하는 나의 김치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농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야채는 물론이고 넣는 양념부터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선했고  아이들도 할머니의 김치에 반해 이제는 엄마인 나의 김치보다 할머니의 김치를 더 잘 먹는다.  
김장김치에 밥 먹는 것이 즐거운 요즘이다. 김치가 맛있어 자꾸 허리띠를 풀게 된다는 남편과 김치에 두부를 싸먹는 것이 이렇게 맛있는 요리인 것을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작은 아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3
마음을 움직이는 엄마의 맛_3

입에 맞는 것을 먹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엄마가 하는 김장하는 법을 어깨 너머라도 봤으니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배우지 못한 무수한 엄마표 요리들이 많은데 언제 그것들을 다 배울지, 과연 그것들을 다 배울 수는 있을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엄마표 '뜸북장'(담북장), 엄마표 가자미식해, 엄마표 고추장 등 '엄마표'를 붙이면 요리의 본연의 맛도 맛이지만 엄마와의 추억이 한꺼번에 몰려와 온몸으로 엄마의 사랑이 전해짐이 느껴진다.

영화 식객, 김치, 엄마표 음식,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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