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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입영 훈련 들어가기 전날에
나에게 쓰는 편지
2010-01-18 00:54:22최종 업데이트 : 2010-01-18 00:54:22 작성자 : 시민기자   유진하

ROTC. 학생군사교육단. 우리 학군사관후보생은 찌는 듯한 여름과 얼어 죽을듯한 겨울이면, 입영훈련에 들어간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총 12주라는 적지 않은 기간을 훈련소에서 보내는 후보생들의 일과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군대가 좋아졌다.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그런데 그건 장교 후보생들에게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 같다. 불합리한 얼차려가 없어졌다면, 훈련 강도는 그만큼 더 높아진다. 우리 훈련이 빡세면 얼마나 빡세겠냐고들 말하는 데, 그래 솔직히 빡세면 얼마나 빡세겠냐만은 그래도 논산에서 훈련받아 본 사람들은 우리 훈련 일정을 들어보면 그런 짓이 가능하냐고들 한다.

훈련병들이 단독 군장으로 교장 이동을 갈 때면, 그 옆에서 우리는 여름에는 위장을 하기 위해 얼굴에는 눈과 이빨만이 보일 뿐이고 전투복도 소매를 모두 내린다. 게다가 군장에 10kg 모래 주머니를 넣고, K2를 내 몸과 같이 여기면서 우리를 보고 불쌍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훈련병들 옆을 묵묵히 지나간다.

동계 입영 훈련 들어가기 전날에_1
동계 입영 훈련 들어가기 전날에_1

그래도 아무나 와서 우리에게 "많이 힘듭니까?" 라며 말을 걸면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라며 참고 또 참는 게 후보생이다. 미련하다며 우리를 비웃을 지 모르고, 우리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안 좋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많은 사람들. "야 너 군생활 그렇게 오래 하고싶냐 시간이 아깝다"며...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다. 병사로 군생활을 해서 얼마나 얻어 온게 많은 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학군사관후보생인 내 생각은 일반 병들보다는 정말 강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매일 매일 시키는 것만 로보트처럼 하고 군생활 편하고 빨리빨리 끝내는 걸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보다는 리더Leader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지휘하고 계획을 세우고, 통솔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임관해서는 내 나이 또래보다 약간 어린 병사들 앞에서 쉽게 보이지 않으려고, 쪽팔리지 않으려고,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지금 이를 악물고 훈련을 받고 매일같이 체력을 단련한다. 
어찌보면 참 무의미할 수도 있다. 군대라는 조직은 통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측면이 간과되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말이 안 통하는 군대에서 배워봤자 얼마나 배우겠냐는 통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너 학군단 왜 들어갔냐. 내 대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학군단에 입단했을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더하면 더했지 내 의지에 변화는 없다. "아, 나는 장교가 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남들처럼 언제나 보통인 인생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비역 선배들이 장난식으로 아무리 장교라고 해도 군대 갔다오면 너 하나도 안 부럽다고 한다. 나는 그런 농담에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실 그런 농담에 별로 충격을 받지 않는다. 확실히 전역한 사람들은 내 입장에서 엄청나게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군생활 그 자체를 누구나 해야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별로 부럽지는 않다.

책임감. 이 단어를 자신의 가슴에 품어본 적이 있는가. 무겁다. 이 말에 별 감흥을 못 느낀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단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는 그랬다. 누군가 학군단을 무시하고 나를 무시하면 목에 핏줄을 세우고 반박을 하곤 했다. 그런데 현실은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직접 경험하거나 보지 않은 이상은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고승덕씨께서 그랬다. 세상에 많은 똑똑한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 또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지금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나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한 비웃음과 야유는 그냥 넘겨버리기로 했다. 다만 내가 나중에 보여주려고 한다. 장교 후보생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어떠한 것을 배워서 오는지, 나라는 사람이 군대로 인해서 어떻게 바뀌는 지, 어떻게 성공하는지.

시간을 돌려도 나는 어떻게든 일반 병들과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어려운 길, 좁은 길. 그 길도 한 번 가본 사람이 더 잘 간다. 항상 훈련 전날이면 이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입대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 보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몇 주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좀 서글프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러한 고통과 인내를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성숙한다.

대한민국 육군 소위를 아무나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쉽게 쉽게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장교라고 할 수 있으며, 군생활 쉽게 쉽게 하고싶다면 그것이 어떻게 리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훈련,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ROTC 학생군사교육단, 입영훈련, 예비역, 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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