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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함께 쌓인 새하얀 생각들
몇 십년만의 폭설을 겪고
2010-01-06 00:37:44최종 업데이트 : 2010-01-06 00:37:44 작성자 : 시민기자   유진하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할 일이 생겨서 집에서 새벽 6시 즈음 발걸을음 떼었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밖을 보니 눈이 오고 있길래 '와, 눈 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밖으로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휘청 거리며 넘어질 뻔 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어느새 내 발은 발목까지 눈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양말 윗부분이 젖었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내 발걸음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버스는 예정대로 도착했고, 사람이 평소보다 조금 많은 듯 했지만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아뿔싸. 평소처럼 한 40분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이게 웬일인가. 종점인 사당에 도착했어야할 버스가 아직 반도 채 가지 못한 것이다. 버스는 종종 걸음을 하는 아기처럼 가고 있었고, 게다가 버스가 고속도로 위에 서있어서 사람들은 내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가, 인도가 보일 때 즈음에 무척 급박해보이던 직장인 한 명이 기사님께 조심히 양해를 구하더니 내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10분, 20분 걸으면 지하철역이 나온다는 것이다. 

눈과 함께 쌓인 새하얀 생각들_1
눈과 함께 쌓인 새하얀 생각들_1

그 때부터였다. 사람들은 줄줄이 열린 문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버스가 텅텅 빌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사람들은 개미들처럼 한 줄로 걷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이야기할 것도 없이 제일 앞에 가는 사람을 쫄래쫄래 따라갔는데, 마치 훈련소에서 봤었던 행군 풍경을 연상하게 했다. 휘몰아치는 눈 때문에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고, 혹여나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렇게 10여분을 걸어 걸어 도착한 지하철. 그곳은 마치 개미들이 모인 개미집 같았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지하철까지 사람이 온통 들어찬 그 모습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통화 내용이 들렸다. 직장에 늦어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통화하는 직장인들과 학교 못가겠다며 좋아하는 학생들, 그리고 연인과의 약속에 늦어서 용서를 비는 사람들까지. 

버스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마치 영화 '2012'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연의 힘은 정말 인간이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폭포수같이 내리던 그 날의 눈은 세상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웃긴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이제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생각하게 되었다. 
눈이 그친 지금도, 얼어버린 눈 때문에 곳곳에서 불평이 들리고 있다. 그만큼 세상에는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일투성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 조차에도 피해를 받으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이 날 느꼈던 생각들을 매번 다시 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지만, 그 중에서도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는 것이 아닐까.

, 폭설, 생각, 자연, 사색, 유 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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