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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피엔딩!
2010-01-26 13:15:45최종 업데이트 : 2010-01-26 13:15:4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해질 무렵 행인들의 발걸음은 조바심이 묻어있었다. 한낮에는 반짝 기온이 상승하여 바깥  나들이에 불편을 주지 않았는데 저녁에 접어들면서 바람도 간간이 불고 모자에 목도리를 자꾸 꾹꾹 눌러쓰게 된다. 이제 놀만큼 많이들 놀았지? 

오랜만에 신혼살림을 할 때 아래 위층에 살던 친구들을 만나서 그동안 풀어 놓지 못했던 수다 보따리를 다 풀고도 아직 아쉬움이 남은 듯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며 밍그적거리고 있었다. 

가정으로 돌아가 귀가할 백성들을 위한 저녁 준비를 할 맘에 양손엔 검은 봉다리 몇 개를 주렁주렁 걸었다. 오늘도 제일 만만한 콩나물과 지글지글 볶아서 조림할 두부 한모를 들고 종종치는 발걸음에 날카로운 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하루 종일 진이 빠지도록 수다를 털어 낸 자리에는 하품과 피곤이 몰려왔다. 

 "아- 피곤하다" 
 긴 수다와 주전부리로 가득채운 하루는 그나마 빈약한 찬거리임에도 정성을 담기가 싫다.
"아-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귀찮음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어깨를 짓누르고 소파는 "일어서지 마라" 허리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해피엔딩!_1
그래도 해피엔딩!_1

그래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없어서 결국은 전화번호부 책을 뒤적거렸다.
"큰 애야. 우리 자장면 시켜먹을래?"
작은 아이가 더 반가와 하면서 정색을 했다.
"엄마 웬일이야?"
"응. 오늘 요술곰 이뻐서"

사랑을 가장한 선심의 속내를 큰 아이는 알면서도 모른 채 해주었다. 엄마보다 더 철든 것 같은 큰아이에겐 부끄럽고 얼굴서지 않지만 또 무너졌다. 

 '오늘만 시켜먹자' 
마음 속에서 꼬드기는 목소리가 윙윙 거렸다. 
 '자주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뭘 아니야 아이들도 좋아하니까 그래 딱 오늘만.' 

결국 탕수육에 자장면을 서비스로 달라는 큰아이의 능숙한 주문에 '내가 너무 했나' 생각했다. 평소에 살림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큰 소리쳤는데 아이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다. 살림의 달인을 가장한 얼렁뚱땅 엄마다.
아직도 정신연령은 초딩?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이 좋다
놀자.
재미있게 놀자.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세월을 어디로 먹었는지 가끔 초딩의 수준에서 멈출 때가 있다.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서 해걸음에 산책을 하고 언제까지나 업고 걸리고 하면서 살 줄 알았다던 친구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들 커 가는 모습은 보이는데 내 나이 먹는 것은 모르고 살았구나고 입을 모았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동네 '폭주족'들은 벌써 입시를 준비하는 고딩이 되었다. 엄마의 키 보다 훨씬 더 훌쩍 자란 아이들의 모습에서 세월 가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아이들에겐 무한한 가능성과 도전의 세월이 오고 있는 것이겠지. 

얼마만의 시켜먹는 중국요리인지 모르겠다. 매일을 하루같이 집 밥만 먹던 아이들에게 별식이 되었나보다. 
길거리 음식과 바깥음식의 유혹에 잠깐 고민하는 엄마의 손목을 지체 없이 잡고 지나쳐버리던 큰아이도 오늘은 만족스러운 듯 "가끔 시켜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한다. 다행이다. 

충실하지 못한 하루였음에도 끝이 좋으니까 오늘은 해피엔딩이다.

살림, 저녁준비, 별식, 중국요리,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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