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변하지 않고, 인간사는 변한다. 역사와 문화는 변해도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무언의 함성으로 진리를 준다. 삶, 그 여유가 영원하게 한다 _1 그러고 보면 지금 세상은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때 시골 사람들은 서울 구경이 생전에 꿈이던 시절이 있었다. 고층 빌딩을 직접 보는 것이 자랑이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택시를 타고 달리던 곳이 고가도로였다. 도시는 도시대로 청계천에 고가도로를 설치하고 교통 도시라고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을 모두 철거하고 사람이 걸어다는 길을 열었다. 차는 더 많아졌는데, 차도를 없애고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을 만든다. 서울의 회현동 고가차도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예산으로 만들어놓고 다시 허물었다. 허물기 전에는 교통 혼잡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길이 훤하게 뚫렸다고 야단이다. 고가차도가 없어져서 청명한 하늘이 보이고, 남산이 눈앞에 펼쳐져서 걷기에도 좋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 그 자체를 유기체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성장, 생멸한다는 말도 했다. 지금 세상사에 과거의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 새삼 공감이 간다. 최근 지구촌은 '저탄소 녹색 성장'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이도 결국은 과거의 삶을 회복하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자연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사람이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로 치우친 적이 있다. 첨단 의료 장비부터 집안의 잠금 장치도 디지털이 장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디지털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인다. 디지털 기술로 큰돈을 번 삼성이 최근 차세대 경영 방침을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적 감성 가치의 만남인 '디지털 휴머니즘(Digital Humanism)'을 선언한 것은 새겨보아야 할 담론이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 인텔(Intel)의 CEO(최고경영자) 크레이그 배럿(Barrett) 전 회장의 은퇴 후 삶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35년간 공룡 기업 인텔에서 현대인을 초고속의 삶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회장직에서 은퇴하면서 이제 한적한 시골 산장의 주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 되는 외진 시골에서 산장을 관리하고 고객을 접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고객 서비스의 핵심은 '빠른 속도'가 아니라, '편안과 여유'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앞서서 컴퓨터로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쓰면서 컴퓨터를 멀리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끊임없이 깜빡이는 커서가 글쓰기를 재촉한다.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편리한데, 생각을 오래 다듬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컴퓨터 글쓰기는 미사여구의 수식을 끼어 넣으려는 한없는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컴퓨터보다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쓰는 신중함이 있다. 펜을 이용한 글쓰기는 깊은 생각의 우물에서 두레박질을 하는 행복감이 있다. 정보화의 시대에도 우리는 혹시 닥쳐올 비정함을 경계하려고 애를 썼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에도 사이트 개설을 하면서 '홈페이지'라며 따뜻함을 표현했다. '정보(情報)'도 '정(情)'이라는 한자어를 쓰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뿐인가.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서로 일촌을 맺으며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듯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즉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인간은 본래의 삶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매일 디지털에 얽매여 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황폐한 정서를 달랠 때는 자연에 기댄다. 들녘의 그윽하고 소리 없는 울림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는다. 새 것, 화려한 것, 큰 것, 빠른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물린다. 오히려 근심을 낳게 한다. 우리의 삶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순수함과 청명한 마음이 담겨야 한다. 한적한 시골 마당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빗자루 몽당이 가슴에 담길 수 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은 채워지지 않는 욕심일 뿐이다. 정신적인 풍요를 즐겨야 한다.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훈훈한 마음의 여유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삶이다. 마음의 경작을 통해서 얻어지는 열매가 나를 영원하게 한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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