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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여유가 영원하게 한다
느리게 걸으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2009-12-10 09:03:23최종 업데이트 : 2009-12-10 09:03:23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자연은 변하지 않고, 인간사는 변한다. 역사와 문화는 변해도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무언의 함성으로 진리를 준다. 
그런데 사람 사는 모습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사회의 모습은 급변하지만,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취향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하듯 오히려 내면의 깊은 세계를 그리워하며 사는 듯하다. 

요즘 걷는 것을 예찬하는 데 이도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요즘 걷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걷는 것이 기쁨이고 그 순간에 황홀함을 느낀다는 찬사를 한다. 심지어 걷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걷는 길을 개발하고 있다. 아예 돈을 내고 걷는 상품도 만들어졌다. 

걷는 것은 인류가 가장 원초적으로 해 오던 본능이다. 걸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다. 걸으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걸어서 경제 활동과 기타 생존 활동을 하게 된다. 

사실 나는 걷는 것이라면 지겹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 나이 때 사람은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 답십리에서 학교를 다녔다. 남들은 서울 태생이라고 하지만, 그때 답십리는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큰 저수지가 있고 논밭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당연히 학교는 없었다. 학교는 고개 저 너머 전농동이라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마을 입구에 모여서 학교까지 걸어갔다. 가도 가도 학교가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다가 쉬고 오다가 쉬어서 저녁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 집에 돌아 왔다. 공부보다 매일 걸었던 고통만 있다. 자전거 하나 사기 어려웠던 시절, 그때 걷기는 고통과 동시에 가난의 은유였다. 

한때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나라의 목표였다.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이 모두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우리 국민이 부지런해서 성과도 빨리 나타났다. 너도 나도 사회에 빠른 물결에 동참을 했다. 밥도 빨리 먹어야 했고, 출근길도 서둘러야 했다. 모두가 빨리빨리 하니까 사회 문화조차도 가속 페달을 밟았다. 건물도 빨리 올라가고 고속도로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생겼다. 

덕분에 우리는 짧은 기간에 가난을 극복했다.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생활도 윤택해졌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가 왔다.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꿈 같이 여기던 마이카도 실현되었다. 이제 세상은 더 빨라지고 초고속 인터넷 시대로 질주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걷기가 유행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걷기는 인간에게 유익하다. 가장 먼저 걷기는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운동이 걷기다. 

걷기의 최상의 매력은 만남에 있다. 걷는 중에는 자동차에 실려 지나쳤던 것들과 만난다. 주변에 나무도 꽃길도 만난다. 불우한 이웃도 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삶을 배우기도 한다. 나무의 의연한 모습에서 험한 세상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다. 들풀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서 삶의 넉넉함을 배운다. 걸으면서 나를 발견하는 것도 큰 수확이다. 걸으면 내면의 정밀함을 들여다볼 수 있다. 

걸으면서 삶을 음미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어떤 인생론보다 정직하다. 걷기는 유동성과 자유로움이 있다는 점에서 인생과 유사성을 지나고 있다. 자신의 몸으로 걸어야 하는 길은 고난과 시련의 길을 가는 인생이다. 고난과 시련이라는 삶의 경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생이 아름답다. 삶에서 우리의 의지는 때때로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묵묵히 걷는 자세에서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더러는 느슨하게 더러는 빠르게 걷듯이 우리의 삶도 구애받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순탄하게 갈 수 있다. 

삶, 그 여유가 영원하게 한다 _1
삶, 그 여유가 영원하게 한다 _1

그러고 보면 지금 세상은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때 시골 사람들은 서울 구경이 생전에 꿈이던 시절이 있었다. 고층 빌딩을 직접 보는 것이 자랑이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택시를 타고 달리던 곳이 고가도로였다. 도시는 도시대로 청계천에 고가도로를 설치하고 교통 도시라고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을 모두 철거하고 사람이 걸어다는 길을 열었다. 차는 더 많아졌는데, 차도를 없애고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을 만든다. 서울의 회현동 고가차도도 마찬가지다. 거액의 예산으로 만들어놓고 다시 허물었다. 허물기 전에는 교통 혼잡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길이 훤하게 뚫렸다고 야단이다. 고가차도가 없어져서 청명한 하늘이 보이고, 남산이 눈앞에 펼쳐져서 걷기에도 좋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 그 자체를 유기체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성장, 생멸한다는 말도 했다. 지금 세상사에 과거의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 새삼 공감이 간다. 최근 지구촌은 '저탄소 녹색 성장'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이도 결국은 과거의 삶을 회복하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자연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사람이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로 치우친 적이 있다. 첨단 의료 장비부터 집안의 잠금 장치도 디지털이 장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디지털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인다. 디지털 기술로 큰돈을 번 삼성이 최근 차세대 경영 방침을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적 감성 가치의 만남인 '디지털 휴머니즘(Digital Humanism)'을 선언한 것은 새겨보아야 할 담론이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 인텔(Intel)의 CEO(최고경영자) 크레이그 배럿(Barrett) 전 회장의 은퇴 후 삶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35년간 공룡 기업 인텔에서 현대인을 초고속의 삶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회장직에서 은퇴하면서 이제 한적한 시골 산장의 주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 되는 외진 시골에서 산장을 관리하고 고객을 접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고객 서비스의 핵심은 '빠른 속도'가 아니라, '편안과 여유'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앞서서 컴퓨터로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쓰면서 컴퓨터를 멀리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끊임없이 깜빡이는 커서가 글쓰기를 재촉한다.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편리한데, 생각을 오래 다듬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컴퓨터 글쓰기는 미사여구의 수식을 끼어 넣으려는 한없는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컴퓨터보다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쓰는 신중함이 있다. 펜을 이용한 글쓰기는 깊은 생각의 우물에서 두레박질을 하는 행복감이 있다. 

정보화의 시대에도 우리는 혹시 닥쳐올 비정함을 경계하려고 애를 썼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에도 사이트 개설을 하면서 '홈페이지'라며 따뜻함을 표현했다. '정보(情報)'도 '정(情)'이라는 한자어를 쓰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뿐인가.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서로 일촌을 맺으며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듯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즉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인간은 본래의 삶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매일 디지털에 얽매여 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황폐한 정서를 달랠 때는 자연에 기댄다. 들녘의 그윽하고 소리 없는 울림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는다. 

새 것, 화려한 것, 큰 것, 빠른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물린다. 오히려 근심을 낳게 한다. 우리의 삶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순수함과 청명한 마음이 담겨야 한다. 한적한 시골 마당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빗자루 몽당이 가슴에 담길 수 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은 채워지지 않는 욕심일 뿐이다. 
정신적인 풍요를 즐겨야 한다.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훈훈한 마음의 여유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삶이다. 마음의 경작을 통해서 얻어지는 열매가 나를 영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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