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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친구
그녀는 내 몸의 한 부분처럼 오늘도 존재한다
2009-12-03 17:09:59최종 업데이트 : 2009-12-03 17:09:59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은희

"삼 년 만인가 봐."
"생일 축하한다."
"나 삼년만에 겨우 한 살 먹은 기분인데?"
병상에서 삼년만에 일어나서 생일을 맞는 S는 모처럼의 만남에 약간 흥분한듯한 목소리였다.

서울의 주변에 위성처럼 붙어있는 소도시, 서울과 인접해 있어서 서울쪽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지역인데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분주해 보이는 곳이다.

우린 약간 비탈졌지만 제법 아늑한 동네에서 같이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다니며 우정을 쌓아왔다. 동네에는 우물이 하나 있어서 시험기간이 되면 밤에 졸까봐 우물 앞에서 만나 서로 잠을 깨워주고 다시 들어가서 시험 공부를 하였고, 맛있는 과자를 서로에게 양보하느라 우물가에 슬며시 두고 오기도 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_1
사랑하는 나의 친구_1

물론 그 과자는 누군가 잽싸게 채가서 우리 셋 다 먹을 수가 없었지만 우물가를 지나다니며 우리는 그 과자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까르르 웃기만 했다. 우리 셋은 오랫동안 같이 다니면서 서로에게 흠뻑 물들어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비슷비슷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삼십의 젊은 나이에 S가 과로로 쓰러지면서 나는 한동안 목표를 잃은 사람처럼 멍청해졌다.
그리고 그 삶의 목표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자신의 자리가 탄탄해 졌다고 생각한 S에게도, 그런 S를 보고 속으로 뭔가 다짐을 했던 내 자신에게도 그건 확실한 배반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멍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시계의 초침이 시침의 어느 한 점을 향해 달려가듯,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한 점을 향해서인가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흔이 되었고, 그 속에서 짹각거리는 초침의 분주함이 느껴질 때도, 어느 한 점에서 꼭 멈추어버리는 시침의 정직함에 가슴 조일 때도, 그래서 이 놈의 시계를 내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니?" 라고 물으면 그녀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요즘엔 새벽운동도 안하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아침먹고 엄마랑 TV좀 보다가 점심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저녁"이라고 대답했다.

"교회는 잘 나가?" 라고 물으면 "빠지지는 않지, 가끔 중매가 들어 오기도 하는데 마음에 안들어. 나 아직 정신 못차렸나봐."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힘없이 들리기에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마음 편하게 해 줄 사람이 꼭 나타날거야."라고 말했다. 
"자아실현 한답시고 백화점에 취직했다가 삼 일 만에 그만 두었어."라는 말에 나는 킬킬대면서 "자아실현 하지마, 그냥 편하게 집에 있어..." 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그녀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니가 나처럼 돼봐라." 우린 동시에 하던 말을 멈추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S가 머뭇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하다니..."
어쩌면 그녀는 지난 십 년 동안 이 말을 하고 싶었던 순간을 참아내며 나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치고 힘들어서 주저 앉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녀는 나의 지침조차 탐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병이 든 후 지난 십여년간, 팽팽했던 그녀와의 관계가 갑자기 저울 추의 한 쪽  무게가 소실되자 뒤뚱거리는 양팔저울처럼 뒤뚱거렸고, 나는 그녀 앞에서 전전긍긍 하다가 맥없이 헤어지기를 반복했었다.

친한 친구랑 더이상 농담을 나눌 수 없다는 거, 친구와 만난 후 뒤돌아 서서 내가 한 말에 대하여 곱씹으며 혹시 그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나 일일이 마음 써야 한다는 거, 그녀와 헤어지고나서 혼자 남았을 때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무수한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야 한다는 거.. 그건 때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 후로 그녀에게 어줍잖은 위로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그저 지켜보았고, 그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그녀의 삶에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간간이 연락을 하며 조심스럽게 만남을 이어왔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8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도 꺽인 날개를 조용히 접고 현재에 안주하며, 편안한 삶을 살고있다. 건망증이 심해서 가끔 핸드폰을 잃어버릴 때마다 궁시렁거리기는 했지만 더 이상 자학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_2
사랑하는 나의 친구_2

내가 몸져 누워있을 때는 먼 길을 한 달음에 달려와서 위로를 해 줄 정도로 그녀는 건강해져 있었다. 
무슨 인연으로 우린 친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좋은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삶의 질곡 속에서 그녀는 내 몸의 한 부분처럼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양팔저울의 한 쪽 무게가 소실될 때마다 서로가 가벼워지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공기처럼 곁에 머무를 것이다. 
사랑한다, 친구...

사랑하는 친구,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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