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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9-12-04 15:21:05최종 업데이트 : 2009-12-04 15:21:0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김장하기 전에 까던 마늘이 대야 채 며칠 동안 베란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빨래 말릴  때마다 발로 툭툭 치고 다녔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_1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_1

김장하기 전에는 바쁜 마음과 기대감으로 가을에 부모님께서 보내준 마늘을 정성스레 까기를 며칠 했었는데 막상 김치냉장고도 다 채워놓고 보니 얼마 남지 않은 마늘이 애물단지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했다. 까기 시작하면 얼마 걸리지 않을 시간을 바쁘지 않은 그 일엔 손을 놓고 게으름이란 놈과 더 사이좋게 지낸다. 


소파에 반쯤 눕다시피한 모습으로 햇빛을  받으며 게으름을 피울 때면 너무 행복하다.
설렁설렁 책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내려다보고 가끔은 낮잠도 잔다.

얼굴에 간질간질 빛이 지나갈 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아지랑이를 연상하기도 한다.

열심히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함이 묻어나지만 나만이 느끼는 호사는 아닐 터이다.


그래도 자주 생각한다. 
저 마늘을 언제쯤이면 껍질을 다 까서 베란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를 치워버릴까? 하지만 거기까지다.

맘만 먹으면 잠시면 될 것 같은데 그 맘먹기가 싫다.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하겠지. 어쩌면 주변의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고 그 공간을 깨끗이 치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베란다엔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감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서 얼마 전 대봉을 한 상자를 구입해서 햇빛 잘 드는 곳에 줄을 세워 두었다.  다홍색의 빛깔이 참 곱기도 하다.

아직 홍시가 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야 하겠지만 학교 다녀오면 먼저 먹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기위해 눌러보는 작은아이의 손길에 인공으로 홍시가 되고 말았다

"아 ! 떫다 "한다. 얼굴 찡그리는 모습도 "테테테" 하는 장난 끼 있는 모습도 이쁘게 보인다.

먹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맘 풍성한 풍경이다.

한자리 턱하니 차지하고 있는 감이 빈자리로 남을 때이면 하얀 눈이 몇 번은 더 내릴 것 같은 시간이 필요로 하겠다 싶다.

왜 몰랐을까?

삶의 한 부분 한 부분 추억하나 없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인생의 모티브들인데 살아가기 바쁘다고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일부러 외면하고 지내온 것이 아닐까?

쓰레기로 버려질 마늘껍질까지도 발에 차 일 때마다 바른 삶의 이정표를 만들어주고 있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_2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_2

나는 그래서 감사한다.

나의 주절거림을 여과 없이 보여도 부끄럽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여전히 찾아 올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하고 또 말없이 보고 가는 이들이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무리가 중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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