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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역사 유적을 찾아서
팔달산 고인돌, 수원화성 돌 뜨던 터 답사
2024-04-09 13:51:35최종 업데이트 : 2024-04-09 13:51:2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바라본 팔달산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바라본 팔달산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팔달산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산은 낮지만, 화성행궁을 병풍처럼 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다. 산색이 연두색으로 바뀌면서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계절에 온갖 봄꽃들이 피어 꽃동산이 되었다. 이런 멋진 팔달산이 오랜 역사유물을 품고 있다. 

팔달산 고인돌

팔달산 고인돌


수원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인 약 7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수원에는 약 25만 년 전부터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동과 이의동, 고색동 유적, 파장동 유적 등에서 출토된 긁개, 여러면석기, 몸돌, 격지 등의 유물을 통해 중기, 후기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팔달산 고인돌

팔달산 고인돌


수원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삼한의 중심지역이었는고 처음에는 마한의 54개 소국 중 모수국에 속했는데 '모수'란 말이 '벌물'이란 뜻으로 '수원'이란 말이다. 고구려가 차지했을 때는 매홀, 신라가 차지했을 때는 수성, 고려 때는 수주 등으로 불리다가 수원이 되었다. 1793년 정조대왕에 의해 화성으로 바뀌었다가 1895년 수원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팔달산 고인돌

팔달산 고인돌


수원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주변에 역사유물이 많다. 팔달산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4기가 있다. 수원화성과 팔달산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팔달산에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된 '팔달산 지석묘군'은 팔달구 팔달산로 318에 있는데 수원화성 화양루 밖에서 수원시립 중앙도서관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있다. 편평한 구릉 위에 1호, 2호가 있고, 위쪽으로 100여 미터 올라가면 3호, 4호가 있다.

팔달산 고인돌

팔달산 고인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고인돌은 양쪽에 돌을 세우고 그 위에 평평한 큰 돌을 얹어 놓는 탁자식 고인돌이기 때문에 팔달산 고인돌은 얼핏 보면 고인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팔달산 고인돌은 덮개돌이 없는 상태이고 규모도 작은 편이기 때문에 문화재 설명문을 읽어보거나 기본적인 상식이 있어야 고인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팔달산 고인돌

팔달산 고인돌


우리나라의 강화도, 고창, 화순을 포함한 전역과 우리의 옛 고조선 강역에 약 3만 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전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최소한 4천 년 전에 고인돌이 분포했던 우리 강역에는 세계 최강의 고대국가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 역사적이며 자랑스러운 유물이 팔달산에도 있는 것이다.

팔달산 수원화성 돌 뜨던 터

팔달산 수원화성 돌 뜨던 터


팔달산 고인돌은 1980년대에 김우영(전 e수원뉴스 편집주간)씨가 발견했다. "우연히 팔달산에 올라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앉아있던 바위를 고인 흔적을 발견하고 고인돌이 아닐까 생각해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최호림 교수를 통해 고인돌임을 확인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고인돌 주변에는 수원화성 축성 당시 돌 뜨던 유적도 볼 수 있다. 돌을 뜨기 위해 돌에 일렬로 홈을 판 흔적, 돌을 떠내 단면이 평평한 바위, 떠낸 돌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모습 등 다양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원화성 팔달산에는 화성장대 밖 경사면, 화양루 밖, 홍난판 노래비 주변 등 곳곳에 돌 뜨던 흔적이 남아있다. 

팔달산 수원화성 돌 뜨던 흔적

팔달산 수원화성 돌 뜨던 흔적


수원화성의 성돌은 숙지산에서 약 81,100덩이, 여기산에서 약 62,400덩이, 권동에서 약 30,200덩이, 팔달산에서 약 13,900덩이를 조달했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에 서쪽의 성터를 닦던 날 팔달산 왼쪽 등성이에서부터 남쪽으로 용도에 이르기까지 6백~7백 보가 모두 석맥으로 되어있어 서성의 한쪽 면은 제자리에서 캔 돌로 성을 쌓았다. 

수원화성을 답사하고 팔달산 둘레길을 걸을 때 고인돌 유적과 수원화성 돌 뜨던 터를 찾아보자. 수원의 역사와 수원화성의 축성에 관해 관심이 가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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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고인돌, 수원화성 돌 뜨던 터, 역사유적,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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