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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통치 철학을 통해 본 21세기 리더의 모습
수원포럼 ‘21세기 지도자와 공동체의 미래’
2021-09-06 10:39:06최종 업데이트 : 2021-09-06 10:39:03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정조 전문가이고, '리더라면 정조처럼'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소수 인원만 참가와 온라인을 활용해 강의가 진행됐다.

정조 전문가이고, '리더라면 정조처럼'의 저자인 김준혁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소수 인원만 참가와 온라인을 활용해 강의가 진행됐다.


지난 3일 오후 제124회 수원포럼이 진행됐다. 강사는 한신대학교 교수 김준혁이다. 김 교수는 정조대왕 전문가로 '리더라면 정조처럼'의 저자다. 주제도 '리더라면 정조처럼 - 21세기 지도자와 공동체의 미래'라는 제목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청 회의실에서 소수 인원만 참가하고, 나머지는 온라인(ZOOM 활용)을 활용해 청취했다. 
 
강의는 내내 유익한 시간이었다. 김준혁 교수는 수원시청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수강생 중에는 그때 함께 근무하던 선후배가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강의를 한다. 청중과 소통을 하고, 수원에서 자란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다 보니 친밀감을 느낀다. 역사 지식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한다. 조선 시대 정조 이야긴데 얼마 전에 우리 곁에 살다 돌아가신 집안 어른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수원의 풍요로운 문화 행사는 정조 때 발행한 3권의 서적에 근거한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무예도보통지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이다. 이 중에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명으로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한 훈련용 병서다. 규장각 검서관인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장교인 백동수 등이 편찬한 책인데, 각종 무예에 관한 자세한 그림과 설명을 붙였다.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그렸고, 이것이 태권도의 원형이기도 하다. 화성행궁 무예24기 시범도 결국 이를 근거로 시행한다.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을 정조가 썼는데, 정조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관료는 실용 있는 정책을 강론하고, 백성들은 실용이 있는 직업을 지키고, 졸병은 실용 있는 기예를 익히고, 상고는 실용 있는 화물을 교통하며, 공장들은 실용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조선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수레가 양 바퀴로 굴러가고, 새가 양 날개로 하늘을 날 듯, 모든 것은 균형이 필요하다. 조선은 문은 숭배하고 무는 천하게 여겨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문무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차별받고 있었다. 정조의 글에는 균형을 잡아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화령전에 있는 정조의 어진. 군복을 입은 이유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지만, '무'를 중시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화령전에 있는 정조의 어진. 군복을 입은 이유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지만, '무'를 중시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화령전에 있는 정조의 표준 영정은 전립을 쓰고, 군복을 입었다. 보통 왕의 어진과 다르다.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군복을 입어 무를 중시하는 마음을 표했다. 당시 실학 정신이 태동하는 때에 정조는 실천을 강조한 왕이다. 

정조 리더십의 핵심적은 변화라고 강조한다. 왕이 돼서 보니, 나라가 심각하다. 국방비가 군인들의 월급으로 대다수 나간다. 기타 진단을 해도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변화하고 혁신하려고 시도한다. 

이 과정에 정조는 봉건적 시대의 군주처럼 독단적으로 하지 않는다. 신하들에게 나라 발전을 위해 정책 안을 제시하라고 부탁을 한다. 이는 당시의 정치 상황과 세태, 나라의 현안 등을 신하들과 소통하려는 의도다. 여기에서 정조의 정치적 이념과 인간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의 정세와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정조는 '상하사방(上下四方), 균제방평(均齊方平)'이라는 신조로 여겼다. 이 표현은 정조의 개혁적인 정신의 상징이다. 이런 사상이 기반이 돼 노비들을 혁파하고자 했다. 그 재원은 수원에서 마련한다. 대유둔 서유둔, 유천둔에서 얻은 수익금을 이용해 노비 혁파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 이는 정조가 곧 유명을 달리하면서 실현되지 않았지만, 세계역사상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일이 조선 사회에서 시작됐다는 의미가 있다.  

정조는 당시 주자 중심의 성리학을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불교와 노장사상, 양명학, 마지막 서학까지 모두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니 받아들이려고 했다. 이는 여러 학파의 장점을 수용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태도다. 수원화성도 학문과 사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탄생한 것이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읽고, 성호 이익, 초정 박제가, 정약용 등 실용적 사상이 기반이 되었다. 

검소한 생활도 마음에 닿는다. 임금이었는데 공식적인 곤룡포 외에는 무명옷을 입었다. 식사도 하루에 두 끼로 하고, 반찬도 5가지로 했다. 옷도 빨아 입었다. 이렇게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왕실 재정은 풍부해진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조정에 보내 국가 예산으로 사용하게 한다. 임금이 모은 돈으로 백성의 가난을 구제하는 데 사용한다. 수원화성도 국가 재산을 쓰지 않고 왕실의 재산으로 조성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감동이 온다. 정조는 미천한 마부에게도 이놈 저놈 하지 않았다. 서얼을 차별하지 않고 등용하고, 노비도 존중한다. 봉건 사회에서 대단히 열린 생각이다. 인간을 존중하고, 서민 중심의 정치를 한 현군이었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성역의궤는 세계기록유산, 만석거와 축만제는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 수원은 세계유산 3관왕을 기록한 특별한 도시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성역의궤는 세계기록유산, 만석거와 축만제는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 수원은 세계유산 3관왕을 기록한 특별한 도시다.

김 교수는 수원은 아주 특별한 도시라고 강조한다. 정조는 수원에서 시범적으로 백성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게 한다. 이 실험에서 성공하고, 상업 행위를 조선 전체로 확대한다. 상업에서 혁신을 이룬 것이다. 화성 축성 후 백성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도록 축만제, 만석거 등 관개 시설도 만들었다.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여러 가지 뒷받침을 한 것이다. 이는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된다. 이로써 수원은 화성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성역의궤는 세계기록유산과 함께 세계유산 3관왕을 기록한 도시가 된다. 

강의 후 염태영 수원시장은 "김 교수는 어려운 이야기를 아주 쉽게 그림을 보듯이 하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분"라고 말하며, "특히 강의도 재미있었지만, 수원에 대한 애향심이 깊고,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는 모습이 좋다."라고 평가를 했다. 

정조는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꿈꿨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사회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 실천했다. 정치 현장에서 오직 백성을 생각하는 리더십도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개혁 정신을 통해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것처럼, 21세기에도 공직자는 국민의 편의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정조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신하들까지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었다. 이런 정조의 정신과 인간성은 가슴에 따뜻하게 와닿는다. 정조의 모습은 오늘날 리더만이 아니라 누구나 배워야 할 사람됨의 모습이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정조, 수원화성, 화성행궁, 리더, 실학사상, 김준혁,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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