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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풍경이 마음을 채워주다
정조대왕의 소망이 깃든 화성행궁 후원
2021-09-13 09:46:54최종 업데이트 : 2021-09-10 10:38:0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미로한정. 후원 위에 있는 정자.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작은 정자이지만, 정조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미로한정. 후원 위에 있는 정자.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작은 정자이지만, 정조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옛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오랜 시간 버텨온 문화재가 남다른 매력을 준다. 건축물도 많이 본다. 크고 화려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름난 건축물을 보다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화성행궁을 볼 때도 신풍루와 봉수당 등에서 한참 머문다. 행궁에 대표적 공간이고, 이름난 공간이다 보니 그렇다. 행궁에서 여기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후원이다. 
  후원은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도 불렀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소통을 즐겼다. 정약용이 남긴 시를 보면, 정조와 정약용은 부용정에 나란히 앉아 술을 나누고 시담을 즐겼다. 이에 비해 화성행궁의 후원은 너무도 소박하다. 위엄이나 호사스러운 멋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넓지도 크지도 않은 대갓집 뒷마당 같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후원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 남아 있지 않다.  
  창덕궁의 후원은 인공으로 만든 자연이다. 반면 화성행궁 후원은 팔달산 자락을 이용해 만들었다. 팔달산 중턱에 지형이 생긴 모양대로 담을 치면서 후원이 만들어졌다. 담장이 산 중턱을 적당히 넘어 자연스럽게 후원이 들어왔다고 해야 맞는다. 말하자면 행궁에 팔달산이 천연덕스럽게 들어앉은 꼴이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장식이 없고, 자연 그대로 모습이 후원이 됐다. 
내포사. 성곽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임금에게 연락하는 초소다. 초소에는 온돌이 깔려 있다. 특이하게 목어가 걸려있는데, 이것으로 위험 신호를 알려 방어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내포사. 성곽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임금에게 연락하는 초소다. 초소에는 온돌이 깔려 있다. 특이하게 목어가 걸려있는데, 이것으로 위험 신호를 알려 방어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언덕에 후원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이 이루어졌다. 이 단이 화계다. 현재 화계는 복원 과정에서 창덕궁의 예를 따라 설치했다. 하지만 창덕궁의 후원처럼 다양한 꽃과 나무는 심지 못했다. 언덕을 살려 만들었으니, 연못이나 누정도 없다. 지형을 따라 길만 냈다. 무뚝뚝하고 남성적이다. 정조의 실용 정신을 연상하게 한다. 겸허하고 정갈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단 위는 바로 가파른 팔달산이다. 위에 미로한정이 있는데, 여기에 오르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 다행히 소나무 사이의 오솔길이 정겹게 위로한다. 잘생긴 소나무들이 산기슭에 살고 있다. 이 소나무는 강원도 양양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멀리서 왔는데도 탁 트인 수원 전경을 보면서 큰 덕인지 모두 팔달산 소나무 같다.
  담 안에 미로한정은 주변 소나무들과 함께 이마를 수원 시내 전경과 봉돈을 향하고 있다. 미로한정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후원 제일 높은 곳에 있어, 여기서 보면 행궁 기와지붕의 멋진 곡선이 보인다. 부끄럽게 고개를 든 처마도 눈에 들어온다. 선조들의 소박하고 무던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미로한정은 다른 누정과 차이가 있다. 누정이 보통 풍류를 더하기 위한 것인데, 미로한정은 정조의 인간적 고뇌를 다듬는 공간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늘 백성을 생각하던 정조로서는 이곳이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개혁에 대한 간절한 염원도 다졌다. 붕당 폐단을 막고, 개혁을 뒷받침하는 세력을 키우는 구상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던 공간이기도 하다. 
후원 소나무. 화성행궁 후원은 팔달산 자락을 이용해 조성했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장식이 없고, 자연 그대로 모습이 후원이 됐다.

후원 소나무. 화성행궁 후원은 팔달산 자락을 이용해 조성했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장식이 없고, 자연 그대로 모습이 후원이 됐다.


  궁원은 물론이고 글깨나 읽은 벼슬아치의 집에는 으레 후원이 있다. 후원은 안 보인다고 남루하지 않다. 은은한 멋이 있다. 특히 자연 풍광 속에 어우러져 집의 품격은 물론 주인의 삶까지 격을 높인다. 작은 규모의 미로한정은 궁원의 후원이 아니라 점잖은 사대부의 정자 같다. 실제로 정조는 노년을 행궁에서 보내고 싶어 했는데, 이 정자는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주인은 사라졌지만, 염원은 상상력으로 남아 있다.  
미로한정에서 본 시내 풍경. 정조는 이곳에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 봉돈도 보인다.

미로한정에서 본 시내 풍경. 정조는 이곳에서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 봉돈도 보인다.


  미로한정의 북쪽 약 60m쯤 거리에 내포사도 소박한 규모다. 화성성역의궤에 포사를 설치하는 것은 오로지 행궁을 호위하기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내포사는 성곽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임금에게 연락하는 초소다. 초소에는 온돌이 깔려 있다. 이곳을 지키는 군졸을 위한 배려다. 내포사에는 특이하게 목어가 걸려 있다. 목어는 불공을 할 때나 사람들을 모이게 할 때 두드려 소리를 내는 기구다. 즉 사찰에서만 볼 수 있다. 내포사 화성행궁 후원의 높은 곳에 있다. 화성행궁 밖에서 알려주는 신호를 받기에 적합한 곳이다. 여기서 깃발을 흔들기도 했지만, 위험 신호를 알려 방어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그래서 목어를 설치했다. 
  화성행궁을 제대로 보려면, 후원도 올라 봐야 한다.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자연과 어울려 있는 모습에서 조상의 지혜로움을 느낀다. 행궁은 자연과 함께 보면, 아름다움은 사뭇 달라진다. 정갈한 지붕과 독특한 정취를 풍기는 처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니 행궁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훤칠한 소나무들이다. 봄과 가을에는 꽃까지 잔치를 이루니 이것들도 가슴을 채우는 풍경이다. 후원에서 한가롭게 거닐어 본다. 정조대왕의 소망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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