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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을 걸으며 아쉬운 2020년과 이별한다
힘들었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빛났던 한 해
2020-12-07 14:51:56최종 업데이트 : 2020-12-07 14:51:2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화성을 걷는 습관이 있다. 바람이 찬 날에도 예외 없다. 코로나19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될 때는 홀로 걷기도 좋다. 화성 공원에서 경기도청 뒷길로 향한다. 여기서 서장대 쪽으로 오르면 가벼운 등산 맛을 느낀다. 암문을 지나 올라서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벤치에서 사람들이 땀을 식히곤 했었는데, 바람만 서성인다.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하늘과 나무를 보게 된다. 맑은 하늘 아래 서장대 처마 끝이 선명하게 보인다. 노적대는 팔을 벌려 하늘을 안으려는 자세다. 정조가 장용영 군사를 호령하던 함성이 들린다. 겨울 풍경에 더욱 정직해진 소나무들은 그때도 저렇게 서 있었을까. 오랜 세월 비바람에 허리가 굽었는데도 오히려 기품이 있다. 이제는 화성의 문화유산과 한 몸이 된 듯하다. 가을 날씨 좋은 밤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작은 숲속에서 풀벌레들이 울어 대고 있었다. 그때 소나무들은 벌레들의 응석을 다 받아주는 수도승처럼 달빛 아래 서 있었다.
서장대 주변 소나무. 기품이 있어 보이는 소나무와 아름다운 서장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장대 주변 소나무. 기품이 있어 보이는 소나무와 아름다운 서장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조대왕이 백성과 함께 누렸던 날들은 역사로 남아 있다. 우리가 누리는 날도 내일이면 과거로 남는다. 시간을 물려주고 옛이야기로 돌아간다. 오늘은 과거로 변하지만, 곰팡내 나는 시간으로 남지 않는다. 역사로 남는다. 역사가 되면서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
 
서장대에서 화서문 쪽으로 내려오면서 여장에 기대어 성곽 밖을 본다. 은빛 억새가 여전히 아름답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냐고 모여들었다. 추위 탓에 지금은 텅 비었다. 멀리 촘촘히 붙어 앉은 집들이 보인다. 저마다 가슴에 품은 낱말이 많을 것이다. 행복한 언어가 가득하기도 하지만, 어둡고 암담한 사연에 가슴 아픈 집도 많겠지.
성곽 아래 은빛 억새.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냐고 모여들었다. 추위 탓에 텅 비었다.

성곽 아래 은빛 억새.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냐고 모여들었다. 추위 탓에 텅 비었다.


살아가면서 한시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다. 물질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너나 할 것 없이 팍팍한 고갯길을 걸었다. 이제나저제나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기다렸는데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내년에는 꼭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화성을 축성할 때를 상상한다. 허허벌판에 돌을 실어다 나르면서 성을 쌓았다. 그때도 겨울은 추웠다. 추위 속에서 인부들은 거칠고 무거운 돌을 이고 날랐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다행히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는 마음이 따뜻했다. 그들에게 털모자를 선물했다. 조선 시대 한겨울에 정3품 당상관 이상만이 귀마개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털로 만든 모자 역시 귀한 물건이었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인부들에게 털모자는 가당치도 않다. 그런데 임금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화성이 이렇게 아름답게 전하는 것은 정조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한몫했다.
 
성곽을 따라 장안문으로 가는데, 장안공원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많던 사람은 어디 갔을까. 휴일에도 공원 광장에 사람이 없다. 노인들만이 햇살도 떨어지지 않는 벤치에서 움켜 앉은 채 추위를 밀어내고 있다. 몇 명은 장기판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도심은 12월에 더욱 화려하지만, 여기 모퉁이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모두가 궁핍한 표정이다. 한겨울에 성벽 돌을 옮기고 쌓을 때도 햇볕은 내렸을 것이다. 그때처럼 저 영혼들의 등에도 따스한 햇볕이 타래 채 쏟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다.
장안공원. 가족 단위, 연인 등이 많이 찾았지만, 겨울이라 한산하다. 노인들만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안공원. 가족 단위, 연인 등이 많이 찾았지만, 겨울이라 한산하다. 노인들만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이 떠오른다. 군주로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기 쉽지 않다. 정조는 다가갔다. 백성에게 품삯을 주며 화성 건설을 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역량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출세와 돈 버는 거와 연결된다.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남을 도와줄 때 행복을 더 느낀다. 이웃을 사랑하는 역량을 키우는 삶이 중요하다. 정조의 일화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장안문으로 걸으면서 성곽의 돌담을 만져본다. 얼음만큼 차갑다. 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함이 밀려온다. 봉건 사회에서 기술자와 인부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다. 당연히 천대를 받는다. 그런데 돌과 화성성역의궤에 그들의 이름을 남겼다. 천하게 여기는 노동에 존경의 표시를 한 것이다.
창룡문 건설 담당자 직급과 이름 새김 돌. 돌과 화성성역의궤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 것은 노동에 존경의 표시를 한 것이다.

창룡문 건설 담당자 직급과 이름 새김 돌. 돌과 화성성역의궤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 것은 노동에 존경의 표시를 한 것이다.


당시 관념에선 백성에게 일을 시키고 함부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조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돌을 던졌다. 하찮은 신분의 노동자들을 홀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공사의 질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혁신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혁신이다. 오늘날 편견과 혐오, 차별이 심하다. 이런 것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이로 인한 갈등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정조가 남긴 정신이 답을 찾는 실마리가 된다.
 
창룡문에 다다르니, 연을 날리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추위 탓이다. 봉돈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성벽 주변이 환하다. 성벽 안쪽까지 차도가 바짝 붙어있었는데, 경사면에 흙을 완만하게 다져서 넓어졌다. 성벽 가까이 차가 다니는 것이 답답했는데, 시원한 느낌이다.
 
화성사업소장이 "남수동 성벽 내탁부 원형 복원사업으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원형을 되찾고, 가치를 한층 높였다"라고 말한 기사를 읽었다.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는 말이다. 수원화성을 보호하고 관리는 일은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른다.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우리에게 또 의미 있는 한해였다. 문화재 복원을 통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역사를 남겼다.
남수동 성벽 내탁부 원형 복원사업으로 수원화성 원형을 되찾고, 가치를 한층 높였다. 문화재 복원을 통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역사를 남겼으니, 올해는 의미 있는 해다.

남수동 성벽 내탁부 원형 복원사업으로 수원화성 원형을 되찾고, 가치를 한층 높였다. 문화재 복원을 통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역사를 남겼으니, 올해는 의미 있는 해다.


동남각루를 지나 남수문에 다다른다. 역사의 수레가 끌고 오는 상상력으로 마음이 넉넉해지고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느낀다. 상상력의 자극이 삶을 역동적으로 이끈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2020년을 건너는 마당에 돌이켜보니 저들이 모두 힘든 해를 보냈다.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으로 견뎠다. 가는 해를 아쉬워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는 또 그만큼 성장했다. 새해에도 모든 사람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기원해 본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화성,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 봉돈,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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