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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마음이 지나는 홍살문
‘수원행궁, 향교, 융건릉, 용주사’의 홍살문을 보다
2021-08-17 14:47:10최종 업데이트 : 2021-08-17 14:47:0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화성 행궁의 홍살문. 옆에 하마비가 있다. 행궁의 규모에 맞게 홍살문도 꽤 크다.

화성 행궁의 홍살문. 옆에 하마비가 있다. 행궁의 규모에 맞게 홍살문도 꽤 크다


화성 행궁을 찾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어딜까. 우스갯소리일지 모르지만 매표소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바로 신풍루로 들어간다. 그리고 화성 행궁을 돌아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행궁의 앞에 있는 홍살문을 못 보기 때문이다. 화성을 제대로 보려면, 광장에 우뚝 서 있는 홍살문부터 지나야 한다.  

행궁 홍살문은 규모가 제법 크다. 둥근 기둥 두 개를 양쪽에 세우고 가로대 두 개를 높이 가로질러 양 기둥을 꿴다. 가로대에 화살 모양의 나무 22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웠다. 중간쯤에 삼지창(창)은 사악한 기운을 막아낸다. 홍살(화살)과 삼지창은 사악한 것을 쳐내기 위한 풍수적 무기다. 붉은색도 악귀를 쫓는 의미가 있다. 홍살문 옆에는 신성함을 위하여 하마비를 세우는 곳도 있다. 여기도 하마비가 있다. 통행인의 신분에 상관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걸어 지나가야 하는 장소다. 

중앙에는 원형의 태극 문양을 장식하였다. 둥근 원안에 홍청색의 두 개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형상이다. 이는 음양과 우주 운행 원리를 의미한다. 태극은 길상과 축복의 의미로, 음양의 배합에서 비롯된 새로운 발전과 번영의 상징이다. 구한말 태극기 문양이 홍살문 문양과 비슷하다. 이 문양은 우리나라 태극기가 됐고, 정부 상징 마크도 여기서 왔다. 이 모양은 의류, 지갑, 핸드백, 벨트 등의 패션 디자인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수원 향교의 홍살문. 향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마비도 함께 있다.

수원 향교의 홍살문. 향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마비도 함께 있다


정조대왕이 원행을묘행차 때 수원행궁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다음 날 아침 일찍(묘시) 찾은 곳이 향교다. 이곳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오성과 송나라의 2현(정호와 주희), 우리나라의 대유학자 18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조선 유학의 상징이며, 유교 이념의 중심지다. 왕이 수원에서 첫 번째 행사로 향교를 참배했다는 것은 당시 그만큼 중요 공간이었음을 상징한다. 

입구에 향교의 권위를 나타내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홍살문은 16개의 화살 모양이 있다. 중앙에 원형의 태극 문양은 둥근 원안에 홍청색 두 개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형상으로 행궁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는 최근에 당간지주 받침돌로 기둥을 세운 듯하다. 이렇게 하면 기둥을 지면에서 띄워 썩지 않게 할 수 있다. 
융릉의 홍살문. 멀리 정자각과 능이 보인다.

융릉의 홍살문. 멀리 정자각과 능이 보인다


융건릉에도 홍살문이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 넓은 숲길을 지나면 융릉으로 가는 길이다. 능역의 신성함을 의미하는 다리 금천교를 건너가면 홍살문이다. 가로대에 화살 모양의 나무는 12개를 세웠다. 중앙에는 태극 문양은 청적황을 장식하였다. 흔히 오행에서 흑, 백의 색을 빼면 청적황의 3원색이다. 이는 천지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은 반드시 뜻을 품고 있음에, 땅이 꼭 받아 응하니, 우리 인간은 하늘땅 그 뜻을 이어받아 천년만년 이어간다는 사상이 들어있다. 


건릉의 홍살문. 능을 뒤로 하고 바라본 모습이다, 홍살문은 앞뒤가 같다.

건릉의 홍살문. 능을 뒤로 하고 바라본 모습이다, 홍살문은 앞뒤가 같다


다른 능의 경우 홍살문, 정자각과 능이 일직선 위에 있어 홍살문에서 보면 봉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융릉은 봉분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잘 보인다. 이는 뒤주 속에서 답답하게 숨진 사도세자를 위해 죽은 후에라도 앞이 잘 보이도록 배려한 정조의 효심에 의한 것이라 한다.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 역시 마찬가지다. 홍살문이 있고, 이곳을 지나 왕이 걸었던 어로를 따라가면 정자각에 도달할 수 있다. 기둥 밑돌은 건릉과 같이 8각형의 돌을 썼다. 

융건릉에서 가까운 용주사에도 홍살문이 있다. 일주문 대신 입구 역할을 하는 사천왕문을 지나면 홍살문이 있다. 기둥이 가늘어 보이지만, 가로대에 화살은 19개다. 중앙 태극 문양은 홍청의 2색이다. 옆에는 절에 홍살문이 세워진 이유를 소개하는 글 판이 있다. 여기에 의하면 정조 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건립하고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용주사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장조와 헌경왕후),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6회의 제를 올렸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 중지되었다고 한다. 여기도 당간지주 받침돌로 기둥을 세웠다. 

 
용주사 홍살문.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건립하고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절에 홍살문이 있다.

용주사 홍살문.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건립하고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절에 홍살문이 있다



사도세자의 묘 영우원을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 도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겼다. 이때 수원부를 처음 옮기고 사직단을 설치했다. 처음에 팔달산에 설치했지만, 돌 뜨는 일에 기울어져, 광교산 서쪽 기슭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사직단 4면에 홍살문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만약 사직단이 있었다면 수원에는 더 많은 홍살문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위치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복원에 어려움이 있다. 안타깝다. 

 홍살문은 궁전, 능, 서원, 향교 등의 앞에 세우던 문이다. 신성한 곳에 세우며 악귀를 몰아내는 의미가 있다. 홍살문은 담장과 문짝이 없어 길 위에 홀로 서 있다. 담장과 문짝이 없으니 거침없이 드나들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문을 만든 이유는 이곳에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함을 갖추라는 표시다. 홍살문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드나드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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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수원행궁, 향교, 융건릉, 용주사, 태극기,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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