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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독립 운동의 성지에서 3·1운동 정신 이어받아!
수원 출신 ‘서양화가 나혜석’의 선구자 발자취 탐방
2025-03-03 08:30:59최종 업데이트 : 2025-03-07 09:15:2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현호

나혜석 생가터 기념사진

나혜석 생가터 (우에서 세번째 황현노 운영위원장)


2025년 3·1운동 106주년을 앞두고 지난 2월 말 수원 출신인 서양화가이며 선구자인 나혜석 생가터가 있는 행궁동을 찾았다. 이날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황현노 운영위원장의 문화예술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논의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의견을 들었다.

 
행궁동 행정복지센터 1층 사무실에서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운영위원장(황현노)과 행궁동 주민자치회장(박영순) 등을 만났다. 이날 나혜석 서양화가의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2025년 4월 25일(금)〜27일(일)의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14회 문화행사에 대한 의논 과정을 듣고, 생가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혜석 생가터 표지석

나혜석 생가터 표지석

 
수원 출신 서양화가 나혜석(羅慧錫)은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나혜석은 "세상에 말한다. 나는 나혜석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꽃보다 더 붉은 영혼을 지닌 예술가 나혜석은 태어난 생가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행궁동 주민들은 나혜석의 태어난 날(4월 28일)에 즈음하여 선각자 나혜석을 기리기 위해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를 14년째 계속 이어가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2층)나혜석 자화상

수원시립미술관(2층)나혜석 자화상

 
'정월 나혜석'은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문학적 측면, 여성학적 측면의 수식어가 붙어 있다. 특히 만주 안동과 서울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로의 나혜석(1896~1948)이 지닌 위상을 밝힌다. 그동안 한국 근대사의 '선각자, 선구자', 여성 운동가'로 인습으로부터의 독립과 이민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실천했다. 
 
나혜석의 만주 안동에서의 독립운동 과정을 보면, 잡지 '삼천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신사참배와 일본식 성명(창씨 개명) 거부, 서울에서 3.1운동으로 옥고(5개월) 등 나혜석이 지닌 독립운동가로의 행적을 밝혀 역사적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나혜석의 민족의식이 민족운동과 결합한 3․1운동의 참여를 넘어선 '기득권' 생활의 포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중국의 만주 안동에서의 나혜석의 민족운동은 중요한 독립운동으로 앞으로 그 실상을 밝히고 연구해야 할 과제다.
 
축제가 열리는 인계동 나혜석 거리(출저: 수원시)

축제가 열리는 인계동 나혜석 거리(출처 : 수원시)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 운영위원장(황현노)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선구자인 나혜석을 기리고 행궁동을 예술마을로 만들기 위해 지역주민과 예술인들이 서로 연대하여 창의적인 무대를 만들어 가겠다."라고 다짐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수원지역의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적 흔적이 있는 곳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만세운동지', 독립운동 결사체 '서호 구국민단 결정지' 축만제의 항미정과 '비밀결사운동지'인 '수원고등농림학교'인 경기상사캠퍼스의 무궁화 박물관을 찾았다.
 
팔산산 3.1 독립운동 기념탑

팔산산 3.1 독립운동 기념탑


이어서, 수원시 팔달산에 있는 3·1운동 기념탑과 독립운동가 이선경, 박선태, 김노적, 이현경 4명의 영웅과 독립운동가 임면수⸱김창숙 비석 등을 찾았으며, 앞으로 독립운동의 터전과 독립운동가의 흔적 탐방을 계속할 것이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장면(출처 : 수원시)

방화수류정과 용연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장면(출처 : 수원시)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은,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만세운동'과 수원의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4월 3일 우정·장안면 만세운동', 이에 보복하기 위해 일제가 제암리 교회에 무고한 주민 20여 명을 가두고 총을 쏜 후, 이웃 마을 고주리의 천도교 가족 6명을 몰살했던 '4월 15일,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등 일제의 침략과 수탈로 민족 존망의 갈림길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20여 차례 만세운동이 있었다.
 
서호 구국민단 결정지 비석 항미정 전경

서호 구국민단 결정지 항미정 전경
서호 구국민단 결정지 비석서호 구국민단 결정지 비석

 
독립운동 결사체 독립운동가 이선경은 1904년 수원시 팔달구 중동에서 태어나 3·1운동 이후,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들을 규합하여 1920년 6월 독립운동 결사체 '서호 구국민단 결정지'인 축만제의 항미정 일대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과 수감 된 독립운동가의 가족 구조 등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수원 일대에서 창가집과 독립신문을 반포하는 등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선전 활동을 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박선태, 이득수는 징역 2년, 이선화, 임순남, 최문순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1년 이선경은 일본 경찰에게 붙잡힌 지 8개월 만에 풀려났으나, 혹독한 고문으로 집으로 옮기자마자 숨졌다. 당시 나이는 겨우 19세였다.
 
비밀결사운동지 비석

비밀결사운동지 비석(경기상사캠퍼스)


'비밀결사운동지'인 수원 고등농림학교'는 1920년대 학생들이 동맹 휴업과 '비밀결사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1919년 3월 3일 이 학교의 한국인 학생 36명이 기숙사를 나와 서울에서 벌어진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1923년 5월 31일 한국인 학생 전원이 조선인 차별 금지 등의 7가지 요구사항을 걸고 동맹 휴학을 단행, 1926년 6월 10일 자진 휴학을 결정하고 순종의 장래에 참여했다. 1927년에는 농학과 김찬도, 우종휘, 고재천, 권영선, 김봉일, 김익수와 임학과의 백세기, 육동백 등이 건아당 등을 결성하여 '비밀결사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의 비석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의 비석

독립운동가 필동(必東) 임면수(林勉洙) 선생은 수원의 자랑할만한 역사적 인물 12인 중의 한 사람으로, 수원에서 태어나 신민회 활동을 하다가 1912년 2월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와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 분교장을 지냈으며 1921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반신불수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30년 11월 사망했다.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의 비석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자연 캠퍼스에 있는 글을 보니,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국채보상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파리장서운동 등을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임시 의정원을 조직하여 부의장을 지냈다.
 

 
수원지역의 애국애족의 성지인 수원 현충탑, 팔달산의 3.1절 기념탑과 독립운동가인 김세환, 이하영, 임면수, 김창숙 선생 비석과 나혜석 생가터 등을 찾아, 숭고한 독립정신과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아 그 얼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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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6주년, 수원 독립운동의 성지, 화가 나혜석 ,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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