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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처럼 스러져간 순국열사들, 겨레의 꽃이 되다
수원박물관 ‘수원 산루리의 독립 영웅들’ 전시회
2021-05-03 13:56:06최종 업데이트 : 2021-05-03 13:56:34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독립운동가 이선경 순국 10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 산루리의 독립 영웅들'이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수원 산루리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한다.

독립운동가 이선경 순국 10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 산루리의 독립 영웅들'이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수원 산루리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한다.


 
봄이면 주변에서 화사하게 피는 벚꽃을 본다. 겨우내 추위에 떨었던 나무는 몸집이 거무튀튀하다. 그런데도 검은 몸에서 꽃이 핀다. 아직도 찬 기운이 있는데 꽃은 화사하게 핀다. 화사하게 피지만 작은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게 벚꽃이다. 그래서 아쉽다. 예쁜 꽃이 바람에 짧은 일생을 마감하며 우리 마음속에 아쉽게 떨어진다.

100년 전인 1921년에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산화한 19살의 이선경 열사도 우리 마음속에 슬프게 기억된다. 4월 21일 한창 핀 벚꽃이 바람에 흩어지는 날 삶을 마감했다. 이선경 열사 순국 100주기에 맞춰 '수원 산루리의 독립 영웅들'이 수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선경을 비롯한 수원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다.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관련 자료 등 100여 점을 보게 되는데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산루리는 지금의 중동, 영동, 교동 등 팔달문 밖 마을이다. 전시장에서 사진으로 보는 마을의 모습은 평화롭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 지배로 전통 마을의 모습은 달라졌다. 일제의 침략과 수탈이 심해져 마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가 없었다. 산루리 사람들은 일제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산루리 삼 남매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의롭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이현경은 일본 유학 중 1921년 3월 1일 히비야 공원 만세 시위를 벌이다 붙잡혔다. 동생 이선경의 비통한 소식을 구금상태에서 듣는다. 귀국 후 여성단체 근우회 설립을 주도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용성은 1930년대 수원체육회와 수원청년동맹 등 당시 수원에서 벌어진 민족적 사회운동에 가담해 활동했다. 

이선경은 1918년 수원공립보통학교(지금의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의 숙명여학교에 진학하고, 산루리에서 통학하며 공부했다. 2학년 때인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구속되고, 3월 20일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로 전학했는데, 1920년 8월 31일 퇴학당했다. '구국민단 사건'으로 체포돼 결석일 수가 20일이 넘었기 때문이다. 

왼쪽은 수원 산루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경 초상화.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오른쪽 언니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화. 언니 이현경은 일본 유학 중 만세 시위를 하고, 귀국 후에도 독립운동을 함.

왼쪽은 수원 산루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경 초상화.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오른쪽 언니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화. 언니 이현경은 일본 유학 중 만세 시위를 하고, 귀국 후에도 독립운동을 함.


1920년 8월 9일 상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수원을 떠나 경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구국민단의 존재를 알아낸 일본 경찰이 14일 경성에서 이선경을 체포했다는 검거 기록이 전시돼 있다. 이선경은 체포된 이후 병을 얻어 재판정에도 나올 수 없었다. 일제의 폭력적 고문 때문이었다. 1921년 4월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구류 8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9일 뒤 세상과 이별했다. 19살의 나이에 겨레의 꽃이 됐다.

산루리에는 많은 독립 영웅들이 일제의 폭거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김세환은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수원의 3·1운동을 주도했다. 만세 시위 후 석방되어 수원으로 왔지만, 삼일여학교 교사로 복직하지 못했다. 수원에서 곡물상을 하며 사회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삼일학교 폐교의 위기를 막는 등 수원지역 교육사에 빛나는 역할을 했다. 사진으로 봐도 눈빛과 입가에 결연한 의지가 넘친다. 석방되고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모습은 행복하면서도 안타까운 느낌이 흐른다.  

김노적은 수원강습소를 졸업했다. 전시된 1916년의 수업 증서는 기록물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증서에 소장 김세환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스승 김세환의 지도로 수원지역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초대 신간회 수원지회장을 역임하며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중경으로 옮긴 임정에 참여하고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광복 귀국 후 긴 투병 생활 끝에 남수동에서 서거했다. 

 
독립운동가 차계영. 오른쪽은 서대문형무소 수감 사진이다. 당시 19의 나이. 어린 듯하지만,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독립운동가 차계영. 오른쪽은 서대문형무소 수감 사진이다. 당시 19의 나이. 어린 듯하지만,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박선태는 산루리에서 태어났다. 비밀 결사 구국민단을 조직해 단장으로 활약했다. 이선경을 비롯해 이득수, 임순남, 최문순, 차인재 등 수원에서 서울 학교에 다니는 젊은이들이 조직원이었다. 구국민단은 '한일합방에 반대하여 조선을 일본제국 통치하에서 이탈케 하여 독립 국가를 조직할 것'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갇혀 있는 사람의 유족을 구조할 것'이라는 2대 목표를 설정해 추진해나갔다.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과 대한민보, 애국창가 등을 수원 읍내에 배포하고 검거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구국민단이 활동 목표를 한일합방 반대와 독립 국가 조직으로 간결하게 표명해 국권 회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유족 구조 목표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독립운동 가족은 생계가 어려웠다. 이들을 돕는 것도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이었다.  

차계영은 초선총독부 급사로 취직해, 같은 급사 등과 독서회를 조직했다. 그 산하에서 격문 등을 인쇄 배포로 노동쟁의 등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검거되곤 했다. 일제에 의해 세 번이나 검거되어 고초를 받을 정도로 치열한 투쟁을 했다. 전시장에는 차계영이 서대문형무소 수감 사진이 있다. 당시 19의 나이다. 어린 듯하지만,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조득렬은 수원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수료한 후 인쇄소 직공으로 일했다. 인쇄 직공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했다. 경제적 궁핍 등은 조선 총독부 차별정책에 따른 것으로 생각해 조선 총독을 처단하기로 했다. 화약과 폭탄 제조까지 비밀리에 했지만, 경계가 엄중해 실패했다. 매년 총독이 남산 조선신궁을 참배하는 것을 알고 암살 거사 일로 잡았지만, 사전에 발각돼 체포됐다. 
1907년 권업모범장 인근의 항미정에서 이토히로부미와 그 일행이 찍은 사진(왼쪽 아래). 팔달문 밖 시장(가운데에서 오른쪽). 수원역 모습(오른쪽) 등 당시 관련 사진 및 유물을 볼 수 있다.

1907년 권업모범장 인근의 항미정에서 이토히로부미와 그 일행이 찍은 사진(왼쪽 아래). 팔달문 밖 시장(가운데에서 오른쪽). 수원역 모습(오른쪽) 등 당시 관련 사진 및 유물을 볼 수 있다.


우리 민족 역사에 가장 가슴 아픈 시기가 일제강점기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해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 당시 서구 열강도 식민지를 넓히고 사회·경제적 침탈을 했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는 우리 민족을 말살하고 소멸하려고 악랄하게 탄압했다. 

다행히 일제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버리며 투쟁했다. 수원의 젊은이들도 짓밟힌 자유와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도 겨레의 꽃이 된 열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지금 풍요를 누리고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사의 몫이다. 

독립운동가 이선경 순국 10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 산루리의 독립 영웅들〉
전시 기간 : 2021. 4. 30. ~ 7. 4.    
전시장소 : 수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관람 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매주 월요일은 휴관일, 휴관일이 공휴일일 경우에는 다음 날이 휴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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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 산루리, 독립운동, 만세운동, 이선경,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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