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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상징건물 ‘국립농업박물관’을 기다리며
농업의 전통과 역사를 잇는 국책 사업
2021-06-03 15:51:03최종 업데이트 : 2021-06-03 15:51:01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국립농업박물관' 건축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박물관이 수원에 들어설 예정이다.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국립농업박물관' 건축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박물관이 수원에 들어설 예정이다

권선구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국립농업박물관' 건축이 한창이다. 2019년 12월 4일 첫 삽을 뜨고, 공사를 하고 있다.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2022년 상반기에 개관한다. 내년 이맘때면 우리나라에 농업박물관이 탄생한다. 수원에 새로운 상징건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이 구역은 가림막을 하고 큰 글씨로 '국립농업박물관'이라고 쓰여 있어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왜 농업박물관을 건립하는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구운동 주민 김○도 씨(63세, 남)도 단순히 "농촌진흥청이 이전한 자리에 짓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국립농업박물관'의 건립목적은 한국농업의 역사와 가치, 미래를 둘러보는 통합적 문화공간 제공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는데 있다. 더불어 교육, 체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는데 있다. 2006년 기초조사를 시행, 2015년 '농업역사문화전시체험관 건립' 예비타당성조사를 완료했다. 2016년 건립 기본계획 수립 후 농림축산식품부 주체 하에 공사를 진행했다. 부지면적은 50,000㎡이고, 연면적은 18,000㎡다.  

특히 서둔동은 정조대왕이 화성 축성과 함께 둔전과 축만제(서호라고 하지만 본래 이름은 축만제다)를 만든 곳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농업과학의 발상지이며 중심지였다. 따라서 역사와 전통으로 봐도 현재 국립농업박물관 건립 공간은 의미 있는 장소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수원을 개혁 도시로 키우려고 한 정조는 먼저 화성을 쌓고, 사람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버려두었던 땅을 개간하여 새로운 논밭을 만들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저수지도 마련했다. 개울을 가로질러 제방을 쌓고 물을 채우고 갑문을 설치하여 관개의 이로움을 일으키니 이것이 만석거다. 그리고 장안문 밖으로 새로 개간한 농토를 총칭해서 대유평이라 했다. 이 역시 정조가 이름을 지었다. 

1795년 화성의 북쪽에 축조한 만석거의 효과를 보고, 정조 23년(1799)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서쪽에 축만제를 조성했다. 여기에 조성된 농토가 서둔이다. 서둔은 대유둔보다 두 배 이상 넓었다. 만석거와 대유둔, 축만제와 서둔은 화성 밖에 있는 것이지만 결국 화성 축성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농경 사회에서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바른 정치다. 갈 곳은 없는 백성들을 이주하게 하고, 저수지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게 했으니 농업 생산량이 많아졌다. 서둔과 대유둔은 수원을 경제적 기반이 튼튼한 자립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 운영한 국영 농장이었다. 정조 임금의 친위부대인 장용영 운영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축만제. 정조가 화성 건설 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축만제를 조성했다. 흔히 서호라고 한다.

축만제. 정조가 화성 건설 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축만제를 조성했다. 흔히 서호라고 한다


내탕금까지 내려서 백성들의 농사를 도우며 통치를 했지만, 우리 역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겪는다. 일제는 1906년 축만제 옆에 권업모범장을 세운다. 명목은 농사 개량이었지만, 일본의 농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10년 일제의 강점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편입하고, 농업 생산물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데 주력했다. 권업모범장은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이끈 바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 시행에 있어서 첨병 구실을 한 기관이다. 

서둔동의 권업모범장 등의 농업 기관은 미군정청 시대와 정부 수립에도 계속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했다. 1962년에는 농촌진흥청으로 개편하여 중앙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전북 전주시로 이전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둔동은 국가 차원에서 근대 농업정책을 펼치고 실천하던 곳이다. 지역적으로도 우리 국토 위도상 가운데 지점이기 때문에 농작물 생육에 필요한 기후와 연구를 하기에 적당한 장소다. 만석거와 축만제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지정하는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 국립농업박물관을 짓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조의 농업 국가 기반을 계승하고, 근대 농업 연구 정책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사업이다.
 
농촌진흥청 공사 당시 현장에서 나온 권업모범장 관련 돌. 일제는 축만제 옆에 권업모범장을 세웠다.

농촌진흥청 공사 당시 현장에서 나온 권업모범장 관련 돌. 일제는 축만제 옆에 권업모범장을 세웠다


국립농업박물관은 농업과 식품산업의 과거뿐 아니라 농업과 농촌의 발전 과정을 현재와 미래 모습으로 전시한다. 첨단 전시기법과 장비를 활용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국민과 소통하는 통합적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주요시설로는 본관, 별관, 온실로 구성한다. 실내는 농업관, 어린이체험관, 입체영상관, 다목적회의실 등을 두고, 실외는 다랭이논, 야외체험장 등 체험공간과 축만제(저수지)를 연계한 관람객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박물관과 차별화된 전시 공간과 콘텐츠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농업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 및 식료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도시 상공업의 발전으로 형태가 달라져도 농업은 미래에도 중요한 산업이다. 박물관도 현재와 미래 세대를 포괄할 수 있도록 첨단농산업, 귀농 귀촌, 도시농업, 미래농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둔동 지역은 농업 혁명이 시작되고, 농업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곳에 농업박물관 건설은 고유한 역사적 자산을 잇는 정체성이 있다. 백성의 삶을 살찌게 하고자 했던 것처럼, 박물관은 미래에도 시민이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세계 유명 박물관을 이야기할 때, 런던 대영박물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을 든다. 이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도시로 언급한다. '국립농업박물관'도 수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물관의 콘텐츠와 역사적 의미가 잘 맞아 충분히 가능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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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박물관, 축만제, 화성, 권업모범장, 정조,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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