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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주년 3·1절 앞두고,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을 찾다
독립운동가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 기록
2024-02-22 16:51:11최종 업데이트 : 2024-02-22 16:51:1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현호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동상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


2024년 105주년 3·1절을 앞두고 지난 2월 21일 이슬비가 내리는 날, 올림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을 찾아 나섰다. 이곳은 수원시청의 도로 건너편, 수원시청역 5번 출구에서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접근성이 매우 좋아 찾아가기가 쉽다. 

'3·1절' 하면 태극기와 유관순이 떠오른다. 그리고 '기미년 삼월 오 일 정오~' 3·1절 노래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대한민국의 귀중한 애국심이다.

 
수원지역에는 독립운동을 한 역사적 기록과 흔적이 남아있다. 독립운동 결사체 '서호구국민단 결정지' 축만제의 향미정 일대와 '비밀결사 운동지' 수원 고등농림학교(현 상상 캠퍼스)가 있던 무궁화 박물관 앞 비석이다. 그리고 필동 임면수 독립운동가 등의 활동상이 동상과 기록으로 곳곳에 남아있다.
 

88서울올림픽, 수원 올림픽공원 전경

88서울올림픽, 수원 올림픽공원 전경


올림픽공원은 권선구 권선동에 있으며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면적 58,454㎡ 크기로 조성되었다. 3만㎡에 이르는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소나무 숲에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잔디밭에는 16개의 조각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운동 시설인 배드민턴장, 축구장, 농구장 및 테니스장 등이 설치되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름답고 쾌척한 공원이다. 공원에는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이 같이 있다.

수원특례 시청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 필동 임명수 선생 동상

수원시청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

 
올림픽공원 잔디밭 중앙에 있는 임면수 선생 동상을 찾으니,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시청 청사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힘찬 의지와 신념이 넘친다. 그 일대의 전경을 보니, 독립운동정신과 올림픽 기념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 새겨진 조각작품도 보인다.
 
조각작품 '생(生)

조각작품 '생(生)'
수원의 평화의 소녀상수원의 '평화의 소녀상'

 
동상 주변에는 88올림픽 관련 조형물 작품이 우거진 나무 풍경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조각상에 세겨진 '기억하는 백 년의 울림, 기억하는 백 년의 미래'이란 글이 가슴에 스며든다. 이 인근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수원시민 4,020명과 133개 단체의 성금으로 2014년 5월 3일 건립되었다고 적혀있다. '독립운동가', '평화의 소녀상', '88올림픽 조각상'이 함께 어우러지 모습이 남다르다.
 
임면수 선생은 수원의 독립운동가로 애족장(5급)을 받은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김세환(3·1 운동 48인 민족대표) ▲임면수(만주 항일투사) ▲이하영(민족운동가) ▲이선경(학생운동가, 구국 민단결성) ▲조안득(우가키 총독 암살미수사건) ▲김향화(수원기생 3·1 운동 주도) ▲김장성(수원 격문사건 주도), ▲박선태(구국 민단결성  ▲홍종철(수원 예술 호연 단체 결성) 등의 독립운동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 인물이 많다. 
 
독립운동가 필동(必東) 임면수(林勉洙) 선생(1874. 6. 13.~1930. 11. 29.)은 수원의 자랑할만한 역사적 인물 12인 중의 한 사람으로, 수원에서 태어나 신민회 활동을 하다가 1912년 2월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와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 분교장을 지냈으며 1921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반신불수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30년 11월 사망했다.
 
역사적인 기록을 더 보면, 신민회 독립운동기지 경기도 대표,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근대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삼일 학교 설립자이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 삼원보 독립운동 기지의 경기도 대표로 활동하며 개척사업과 신흥무관학교 개설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민족학교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다. 1910년대 중반에는 부민단의 결사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3․1운동 이후 통화현에서 해룡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 투옥되었다.' (출처 : 수원시 홈페이지 수원의 인물 편)
 팔달산 3·1운동 기념탑

팔달산 3·1운동 기념탑
3·1 운동 기념탑의 만세 동판3·1 운동 기념탑의 만세 동판


또한 팔달문에서 팔달산 성곽길을 따라 서장대를 향해 오르면 '화양루'를 만난다. 여기서 평평한 지형으로 더 오르면, 3·1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 독립기념비가 있다. 3·1운동 기념탑은 1969년 수원시민의 날인 10월 15일에 설치했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 후손들이 길이 보존하고 있다.

3·1 독립운동기념탑은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들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 후 중포산에 세운 것을 삼일 동지회가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놓았다. 
 
기념비 설명문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 송산, 사강 지역에 3·1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여기서 왜경 수원경찰서사범계 노구치 소위가 가혹하게 진압하면서 주민들에게 처단당했다. 일제는 그를 기리는 순직비를 삼일상고 근처에 세웠다. 수원 군민들은 당장이라도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광복이 되고 바로 없앴다. 대신 그곳에 대한민국 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1969년 10월 15일 지금 자리인 팔달산 정상으로 옮겼다.'. 라고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처 : 기념비 설명문)
 
수원에서 유일하게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인 김세환 선생의 집터(팔달구 정조로 792) 안내판이 있다. 선생은 수원지역에서 3·1운동을 사전에 기획 실행하는 등 선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수원고등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있고, 매향 여자고등학교 역사관에 '자랑스러운 매향'으로 기념하고 있다.
 서호구국민단 결정지, 축만제 전경

서호구국민단 결정지, 축만제 전경


수원지역에는 독립운동을 한 역사적 기록과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서호구국민단 결정지와 '비밀결사운동지 수원 고등농림학교'를 비롯하여 독립운동 관련 동상, 3·1 운동 기념탑, 현충탑 등 기억의 공간을 찾아 참배하고 상기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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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 올림픽공원, 3·1 운동 기념탑,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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