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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을 걷다 보면 보물을 만난다
화서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 팔달문을 다시 보다
2020-11-09 15:54:25최종 업데이트 : 2020-11-10 11:07:3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화서문이 서북공심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둘 다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이다.

화서문이 서북공심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둘 다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이다.

 
휴일이면 화성에 자주 오른다. 지금 화성은 가을이 깊게 물든다. 시민들은 가족과 연인과 여가를 즐기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이 아쉬운지 연신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가을 햇살을 등에 지고 화성을 걷는 발길에 함께 한다.

 화성은 사적 제3호다. 역사상·학술상 가치가 큰 유적지는 국가가 법적으로 특별히 사적으로 지정한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다.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유산을 특정 국가에서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노력하겠다는 정신이 담겨 있는 조치다. 

 화성은 특별히 보물로 지정된 곳도 있다. 팔달산 자락 끝에 화서문은 보물 제403호다. 정조가 아버지 영전에 배알하고 하룻밤을 묵은 후 신하들과 팔달산에 올라 축성의 방략을 논의하고 하교했을 것이다. 상상하건대 정조가 내려온 길목이 나중에 화서문으로 섰을 것이다.

 정조는 구시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당대 선진학자들이며 특히 실사구시의 이념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학자들과 함께했다. 그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찬란한 문화 시대가 펼쳐졌다. 그리고 수원 화성을 남겼다.

역사의 공간이 지금은 장안공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때의 치열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덤덤하게 휴일을 즐기고 있다. 여행하다 보면 국보네 보물이니 하면서 지정된 곳은 보존 명목으로 울타리를 해 놓았다. 가까이 가서 보는 것도 힘들다. 여기처럼 보물에 누구나 들어가고, 가까이 만지며 즐기는 것이 흔치 않다. 그렇다면 화성을 걸으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행운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서문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북공심돈은 보물 제1710호다. 정조 화성 순행 때 공심돈에 이르러 동행한 신하에게 "공심돈은 우리 동국의 성제에서는 처음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하는 마음껏 구경하라"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벽돌로 성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시설이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이미 청나라 벽돌을 예찬했다. 이 벽돌을 우리나라 성곽에 쓰면서 지금처럼 아름다운 공심돈이 탄생했다. 


  기품 넘치는 서북공심돈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망설이다가 말을 건넸다. 수원에 사는 친구 따라왔다는 여학생(23세, 대학생, 서울 거주)이 "수원화성을 말로만 들었는데, 너무 멋지다. 성곽 전체가 물결처럼 흐르는 모양부터 외적의 침입을 막는 성곽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을 만든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에 수원에 산다는 학생(23세 대학생, 영통)이 "그래서 세계 문화유산"이라 웃으며 말했다. 결국 필자도 "이 중에 서북공심돈과 여기 화서문, 저기 방화수류정과 팔달문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고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공심돈을 올려보니 푸른 하늘에 구름도 한 점 없다. 정조가 통치하던 그때도 백성들은 푸른 하늘처럼 큰 소망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방화수류정.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방화수류정.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장안문을 지나 방화수류정에 이른다. 보물 제1709호다. 화성이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정감있게 다가서는 이유는 여럿이 있다. 그중에 방화수류정은 으뜸이다. 방화수류정은 성곽이라기보다는 정자다. 치장도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다. 열려 있기에 바람이 지나고 물소리가 들린다. 앉아 있으면 주변의 풍치가 몰려온다. 정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자연이다. 자연에 순종하면서 함께하고자 했던 염원이 방화수류정을 있게 했다. 주변 경관이 뛰어나 이름도 방화수류정이다. 정조는 왕권과 조정을 지키는 긴장 속에서도 방화수류정을 자주 찾았을 것이다. 열려 있는 누각에서 세상을 향해 치열한 내공을 다지고, 밤에는 달빛을 벗 삼아 책장을 부스럭거리며 고뇌를 달래지 않았을까.


'창성사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고려 때의 탑으로 화성을 관람하다 만나는 보물이다.

'창성사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고려 때의 탑으로 화성을 관람하다 만나는 보물이다.


화홍문 수문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뒤로 하고, 삼일상업고등학교 쪽으로 오르는 언덕 기슭에 조그만 비각 하나가 있다. 수원 화성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이것도 국가 지정 보물이다. '창성사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보물 제14호)인데, 창성사에서 입적한 진각국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때에 만들어졌다. 본래 광교산 기슭의 창성사 폐사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보호각을 설치했다. 외롭게 서 있는 비각은 겉으로 보면 낡아서 실망이 클 수 있다. 하지만 틈새로 자세히 보면 비의 규모에 놀란다. 고려말 충신 이색이 지은 비문을 21세기에 만나니 기록의 영원함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팔달문은 보물 제402호. 정조대왕은 성을 순행할 때 팔달문에 이르러서는 문루에 올라 쉬고 서장대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 화서문이 풍류를 즐기는 선비 같다면, 팔달문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강직한 성품의 정승 같다.

팔달문은 보물 제402호. 정조대왕은 성을 순행할 때 팔달문에 이르러서는 문루에 올라 쉬고 서장대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 화서문이 풍류를 즐기는 선비 같다면, 팔달문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강직한 성품의 정승 같다.


연무대, 봉돈을 지나면 팔달문이 보인다. 매일 지나는 이 문도 보물 제402호다. 화성의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문이다. 그래서 수원 사람들은 이곳에 올 때 남문에 온다고 한다. 화서문이 풍류를 즐기는 선비 같다면, 팔달문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강직한 성품의 정승 같다.

이곳은 수원시의 최대 번화가다. 옆으로 제법 큰 시장까지 모여 있어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지나는 길목이다. 주변은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며 번잡한 길가에서 차들이 주변을 돌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팔달문은 도시의 한복판에 있다 보니, 성벽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다. 수원화성 복원 당시 성곽을 연결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완전 복원 연결은 어려워도 한쪽이라도 해 놓았으면 가까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정조대왕은 성을 순행할 때 팔달문에 이르러서는 문루에 올라 쉬고 서장대에 갔다는 기록이 있으니(정조실록 46권, 정조 21년 1월 29일, 1797년), 그때를 그리워하며 지금은 눈맛만 누린다.

팔달산 처마 끝에 저녁노을이 걸려 있다. 우뚝 솟은 문루의 모습이 성곽의 위용을 보인다. 그러면서 소담스럽게 기품이 있는 모습도 풍긴다. 그렇다. 화성은 성곽의 시설물로 엄숙하고 위엄이 있는가 하면, 고상하고 의젓한 정서도 함께 다가온다. 그래서 화성은 특별히 어느 것만 보물이라고 지정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국가 시스템이 현실적 한계가 있어 불가피하게 선별해서 보물을 정한 것이 불편할 뿐이다.

오늘 작은 여행도 수원화성의 사적과 보물을 구분한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 위한 것이다. 늘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해 자세히 구분해 본 것이다.

문화재를 보면 안내판을 보는 습관이 있다. 복잡한 수치와 학문적 배경이 결합한 설명은 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때로는 문화재를 보는 데 방해 요소가 된다. 문화재를 지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늘은 느낌으로 만나고 싶었다. 무릎을 꿇고 때로는 눈을 감고 화성을 본다. 역사의 기억과 감성으로 읽는다. 220여 년 전에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또 잘 보존해 200년, 300년 후까지 미래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오늘 답사 기록도 그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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