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일제강점기 김세환과 수원지역 사회운동
김세환 선생 집터 가빈갤러리 인문학 강의 열려
2022-10-17 12:37:46최종 업데이트 : 2022-10-17 12:37:4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조성진 대표 인사


지난 15일 오후 2시에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에서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일제강점기 김세환과 수원지역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번 강의는 수원문화재단이 주관하고 가빈갤러리가 주최하는 '2022 문화도시 동행공간 프로젝트'인 '독립운동가 김세환 집터지키미 교육'으로 열린 것이다. 지난 1일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가 '1호 검사 이준 열사와 비밀의 숲 검사 황시목'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이후 2번째이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세환(1889-1945) 선생은 수원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났고 교회를 통하여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교육가로서,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후 서울의 관립 외국어학교로 진학하여 공부하였고 일본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귀국 후 고향인 수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강의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강의


1908년 수원의 조선인 상업인들이 '수원상업회의소'를 설립했고 그 안에 상업에 관한 지식, 기능의 강습을 목적으로 상업강습소를 설치하였다. 상업강습소는 낮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야학으로 운영하였다. 김세환 선생은 1909년 상업강습소 직조감독관으로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1915년 일제는 상업회의소령을 반포하여 기존의 상업회의소에 대해 견제를 하였고 1916년 수원상업회의소가 해체되면서 강습소는 폐쇄의 위기를 맞았다.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상업강습소를 주학으로 전환하여 운영하였다. 1926년 '화성학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유지할 수 있었고 현재 수원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들과 한동민 관장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들과 한동민 관장



1913년 당시 수원의 교육상황은 서당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 정도였는데 김세환 선생은 삼일여학교 학감으로 부임하였다. 학교를 자주 비우는 밀러 교장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면서 삼일여학교를 새롭게 단장하는 열성을 보였다. 학교 건물에 한반도 지도를 조각해 넣어 학생들과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 시키고자 하였다.

김세환 선생은 YMCA 간사였던 박희도를 통하여 1919년 2월 10일경 3.1운동 준비 모임에 참가하였다. 이후 충남지역과 수원지역의 조직 책임자가 되어 활동하였다. 충남 해미의 김병제, 수원 남양교회 동석기, 수원 종로교회 임응순, 오산교회 김광식, 이천교회 이강백 등을 만나 민족대표로 서명하도록 승낙을 받았지만, 김세환 선생의 서울 도착이 늦어져 독립선언서에 기명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독립선언서에는 기명을 못하였다.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선물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선물



수원시내의 3.1운동은 김세환 선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김노적은 수원상업강습소 제2회 졸업생으로 김세환 선생의 제자였고 박선태는 수원상업강습소 보조교사로 그의 후배였다.

김세환 선생과 김노적은 수원시내 3.1운동을 삼일학교 교정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이후 수원시내를 거쳐 화성학원까지 가는 만세시위로 준비하였는데 일본 경찰에 탐지됨에 따라 저녁 횃불시위로 대체되었다. 3월 1일 저녁 방화수류정에서 수백 명이 모여 횃불시위를 펼쳤고 봉수대, 팔달산 화성장대 등 20여 곳에서 횃불시위가 펼쳐졌다. 횃불시위는 수원군 전역으로 퍼져 나가 전국적으로 가장 격렬한 만세 항쟁을 펼치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선물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선물



김세환 선생은 1919년 3월 12일 체포되었다가 1920년 10월 석방되어 수원으로 돌아와 사회활동과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유지로서 역할을 하며 여러 사회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연합조직이었던 신간회에 참여했고 1928년 신간회 수원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수원체육회를 조직하는 등 평생 지속적인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강연에는 김세환 선생의 후손 세 분이 참석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독립운동가 김세환 집터지키미 교육'은 22일 오후 2시에 '잊혀진 시베리아의 항일 영웅들'이란 주제로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강의가 이어진다.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김세환 선생의 집터인 가빈갤러리 인문학강의, 김세환 선생 후손인 윤창혁 선생의 작품



가빈갤러리(조성진 대표)는 김세환 선생의 집터라는 의미를 살려 2019년부터 2층에 전시공간을 마련해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집터 전시회'라는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교육자,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로서의 김세환 선생을 조명하는 전시회이다. 가빈갤러리는 수원의 독립운동과 김세환 선생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다.
한정규님의 네임카드

김세환, 가빈갤러리, 조성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한정규

연관 뉴스


추천 2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