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명심보감의 공자가어를 떠올리며
자식이 부모를 봉양코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네
2012-04-18 21:38:31최종 업데이트 : 2012-04-18 21:38:3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시민기자에게는 농사를 지으시면서 참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온갖 고생하며 우리 6남매를 최선을 다해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키워 놓으신 부모님이 계셨다. 두분 모두 3년전, 그리고 8년전에 이미 먼 나라로 떠나셨지만 두분을 생각하면 이따금씩 너무나도 보고 싶어 눈시울이 젖고 목이 메어 온다.

아버님은 치매까지 앓으셨다. 
한번은 아버지가 "저 새의 이름이 뭐라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버지 저 새는 비둘기예요"
잠시 후 아버지는 또 물으셨다. "저 새이름이 뭐니?" "비둘기라니까요"
그리고 다시, 아버지가 또 묻자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로 귀찮아 하며 "아버지 비둘기라고 가르쳐 드렸잖아요. 왜 자꾸 같은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옆에 있던 어머니가 말하셨다.
"얘야, 너 어렸을 때 아버지는 네가 같은 질문을 수십 번 해도 짜증내지 않고 가르쳐 주셨단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는 비록 새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결코 아들인 나의 이름은 잊지 않고 있었다. 평생 아들 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오신 당신은, 녹음이 짙어 오던 5월 어느날 바람처럼 떠나셨다.

그런데...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80대의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전날 저녁 심하게 다투자 아파트에 사는 이 할머니가 다음날 "내가 사라지면 부디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며 살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생을 마감하셨다는 신문 기사가 가슴을 콕콕 찌른다.

5남매를 둔 이 할머니는 남편이 수년 전 세상을 떠나자 막내아들과 함께 살아왔는데 큰아들과 막내가 다투자 삶에 회의를 느끼신듯 했다. 노인네가 먹으면 얼마나 먹고 용돈을 쓰면 얼마나 쓸 것인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옛말에 부모는 열 자식 거느려도, 열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일 것이다. 

고려시대에 고려장을 치르려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골로 찾아들던 아들이 솔잎을 따서 걸음 따라 뒤쪽에 흩뿌리는 아버지에게 그 연유를 묻자 "네가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을까 봐 표적을 남겨 놓는 것이니라"고 했다.
자식은 아버지를 지게에서 내려놓고 부둥켜 안고 울고는 집으로 다시 모시고 돌아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명심보감의 공자가어를 떠올리며_1
명심보감의 공자가어를 떠올리며_1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기 전에는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없었고 태어나서 부모자식의 연을 맺고 살다가 또한 부모가 되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원래의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감을 잊고 대부분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천상병은 그의 시 '귀천'에서 인생을 '이승은 아름다운 곳의 소풍이요, 소풍을 마치고 본가인 하늘나라로 돌아가 이승의 소풍이 즐거웠다 말하리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니 부모한테 함부로 하고 불효한 자식이 자신의 자식한테 효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의 자식이 불효하는 부모한테 무엇을 보고 배우게 될까. 

명심보감의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말이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멈추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코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네. 한 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세월이요, 또다시 뵈올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라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