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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빼라, 꼬추라고 쪼맨한 게...
어릴적 목욕탕에서 일어난 '대굴욕 사건'
2012-06-28 08:26:39최종 업데이트 : 2012-06-28 08:26:39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퇴근후 날이 더워 샤워를 하려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닦다 보니... 앗, 때가 밀린다. 그동안 샤워만 했지 때 미는건 소홀히 했더니 이 때라는 녀석들이 종족번식(?)을 했나보다. 
욕실에 누워 슬슬 때를 밀며 눈을 감았더니 재미난 옛 추억이 스멀스멀 기억이 났다. 어릴적 무척 난감하고 창피한 기억이...

양반 상놈 가릴것 없는 요즘이지만 어릴때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은 안동 김씨 집성촌이었다. 그때의 우리 마을에서는 모두다 여전히 촌수(寸數. 항렬) 따지며 '한 권위' 하는 상당히 보수적인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항렬에 맞춰 애 어른 할것없이 서열이 매겨져 있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어른이라 해도 항렬이 낮으면 항렬 높은 아이한테 깍듯이 '아저씨' 또는 '당숙' 이라고 칭했고, 나이 어린 사람도 나이 많은 어른이 항렬이 낮으면 '조카' 또는 '조카님'이라며 확실히 항렬대로 호칭을 했다. 
나 역시 항렬이 꽤 높은 편이었기에 나보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로부터 꼬박꼬박 아저씨 혹은 당숙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자랐다.

시골에 목욕탕이 있을리 만무한 그 시절, 도회지 중학교에 갓 입학한 시골뜨기인 내게 목욕탕의 첫 추억은 생경했지만 우스꽝스러움 그 자체였다.
도회지 중학교로 '유학'을 떠나 홀로 자취하며 지내던 어느날, 소위 용의 검사라는걸 한다며 꼭 목욕하고 오라는 선생님의 으름장에 기가 죽어 난생 처음 목욕탕이라는 곳에 가야만 했다.

친구들에게 목욕탕에서는 어떻게 하는거냐고 묻기도 창피해 한참을 망설이다가 '까짓거 들어가서 때만 벗기면 되는거 아냐?!'하는 배짱이 생겼다. 무얼 가져가야 할지 초장부터 헷갈려 곰곰히 잔머리를 굴리기는 했지만 나는 '상식' 선에서 비누와 수건, 그리고 여벌의 속옷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그 속옷 때문에 일이 터졌다.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곁눈질로 누구를 흉내낼 것도 없이 옷을 죄다 벗은 뒤 팬티를 입은 채 탕 속에 들어가 느긋하게 자세를 잡았다.
 '아무렴,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뼈대 있는 안동 김씨 집안 자손인데 아무리 목간이지만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는 곳에서 어떻게 마지막 빤쮸마저 벗을 수 있을까. 어이 따끈허다'

 
힘빼라, 꼬추라고 쪼맨한 게..._1
힘빼라, 꼬추라고 쪼맨한 게..._1

사단은 그때 벌어졌다.  때밀이 겸 목욕탕 관리원이 들어와 나를 보자마자 커다란 눈을 치켜 뜬채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윽박질렀다.
"얌마 짜식아, 목욕탕 속에 빤스 입고 들어가는 놈이 어딨냐? 빨리 안 벗어!"
헉.... 스타일이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아저씨더러 때를 좀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양반이 나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어린 것이 때를 밀어달라고? 나원 참..."이런 표정이었던듯 했다. 목욕탕에 처음 가본 내가 그런 사정을 알리 없었다.
어쨌거나 한동안 내 등의 때를 밀던 아저씨가 갑자기 휑~ 하니 밖으로 나가 한참만에 돌아와서는 날더러 돌아누우라 한다. 그리고는 다시 때를 박박 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용히 "어디 갔다 오셨어요?"하고 물었더니 때밀이 아저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딱 한마디 툭 던졌다.
"잠시 쉬고 왔다."

때가 얼마나 많았으면, 그걸 닦아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프타임까지 필요했을까.  그래서 얼떨결에 "죄송합니다" 했더니 즉답을 하시는 이 아저씨 입담 정말 장난 아니었다.
"괜찮다. 근데 니 별명 지우개냐?" 
"예~에?"
잠시 전보다 더 강력한 포스가 느껴지는 이 한마디에 나는 얼굴이 벌개져 몸둘바를 몰랐다. 

그러던 와중에 진짜 걱정거리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건 아랫도리였다. 혹시 '그 곳'을 닦을때 속 모르는 이것이 우뚝 서면 어쩌지?  때 타올이 허리 아래서 왔다갔다 하는 동안 어린 마음에 심장이 쿵쿵 거리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닥쳐올 상황에 대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리며 얼굴이 벌개져 오들오들 떨고 있을때 때밀이 아저씨가 최후의 카운터 펀치를 한번 더 날리셨다.
"힘 빼라! 꼬추라고 쪼맨한게..."
쪼맨한....게? 헉...
나의 첫 목욕탕의 추억은 굴욕 그 자체였다.  도망치듯 목욕탕을 나온 나는 군대에 갈때까지 다시는 목욕탕을 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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