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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 할머니,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요
2012-08-19 11:21:00최종 업데이트 : 2012-08-19 11:21:0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퇴근길에 택시를 탔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차들이 정체되고 있었다.
"차들이 앞에서 움직일 기미가 안보이네요."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해 보이는 풍채의 택시기사님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자꾸만 앞쪽을 살폈다.
"사고가 났나 봐요. 여기는 이시간에 차가 막히는 곳이 아닌데..." 

아, 그런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보니 저 앞에 종이가 한가득 실어져있는 리어카를 끌며 늦은 속도로 걸어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오르막길에 다달아 넘어가지 못하는 폐 종이를 가득 실은 리어카. 나는 그 광경을 힐끔힐끔 보며, 종이의 엄청난 양에 놀랬다.  그 리어카 한 대가 가파른 언덕을 곰실곰실 오르자니 속도가 안나고 뒷차들이 밀려버린 상황.  그러나 그 옆을 지나는 행인들은 그냥 슥슥 지나쳤다. 

리어카 할머니,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요_1
리어카 할머니,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요_1

택시기사님더러 잠깐만 내려 달래서 밖으로 쫓아나가 리어카를 밀어드렸다. 내가 나서자 그제서야 다른 행인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의 예상보다 리어카는 훨씬 더 무거웠다. 거기다가 얼핏보니, 리어카 바퀴도 바람이 좀 빠져서 잘 굴러 가지 않아 더 무거웠던것 같다.  다행히도 여러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뒤에서 밀어 주어 할머니의 리어카는 오르막을 빨리 올라가고 있었다. 

고맙다시며 인사를 해 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뒤로 한 채 택시에 오르다가... 택시기사님에게 그냥 그때까지의 요금만 계산해 드리고 다시 리어카 할머니쪽으로 걸어 갔다.
 그 오르막길이 삶의 가파른 여정인듯, 할머니는 다 올라선 뒤 리어카를 잠시 옆에 세운뒤 한숨을 돌리셨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훔친 뒤 깊은 숨을 내쉰다. 

오르막길은 해결 됐지만 저 앞으로 학교 앞이라 과속방지턱도 몇 개나 있는데 그건 또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라, 오늘은 나도 좀 걷자'하며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지 못하실까봐 리어카를 밀며 저만치까지 동행 하기로 했다. 다시 출발한 리어카 뒤에 따라가다 보니 할머니 허리는 기억자요, 나이테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나풀나풀한 몸빼 바지에 남방 같은걸  입고 낡은 면장갑 낀 손으로 까만 밧줄을 동여맨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는 그래도 하얀 웃음을 잊지 않으시며 "고마워요" 하신다. 삐걱 거리는 리어카의 녹슨 바퀴도 할머니의 무릎 만큼 버거운 소리를 내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인다.

"돈 좀 많이 벌으셨어요?"
 많이? 이게 부질없는 질문이라는거 알면서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를 좀 쉬게 해드리고 싶어 여쭈었다.
"돈벌이는 무슨 돈벌이가 되요"
"힘드시죠"
"예, 그래도 감사하면서 살아요.... 움직일 수 있으니...."

할머니와 문답을 하면서 느릿느릿 가는데... 마침 옆으로 꼬마 아이가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지나치다가, 아 글쎄 다 마신 우유 팩을 그대로 길가에 탁 던지고 가는게 아닌가. 그것을 본 할머니께서 리아카를 살짝 옆에 세우고 그 우유갑을 주워서 리아카에 담았다.  길거리 청소까지 하시는 할머니.

뒤에서 보니 할머니는 짐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고 그 위에 보이는 도시의 하늘은 파랗다.  하늘에 별들이 마중 나오기 전에 들어가셔야 할텐데...
과속 방지턱 3개를 무사히 넘긴 뒤 조심해 가시라는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고맙다 하신다. 

그러나 내가 더 감사하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그래도 감사하면서 살아요...."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몇번이고 반복하여 중얼거려 본다.
"감사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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