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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갔다가 만난 노숙자
1000원짜리 한장 왜 놓아드리지 못했을까?
2012-08-27 23:05:23최종 업데이트 : 2012-08-27 23:05:2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애
볼일이 있어서 지난 주말에 서울에 갔었다. 
서울역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수원역과는 비교도 안되는 번잡함이 있었다. 전철에서 내려 염창동쪽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그곳 육교 밑 지하도에는 최근에 서울역을 정화한다면서 서울역에서 구걸하던 사람들을 죄다 출입금지시킨 덕분에 그곳에서 쫓겨 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중에 누군가 불쑥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길래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서울에서는 한두번 보고 겪는 일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약 10m쯤 지나니 누군가 또 앞을 막아섰다.
약간 짜증도 났다. 날도 더운데 내가 길를 잘못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너명의 훼방꾼(?)을 피해 지하도를 빠져 나오는 동안 그곳이 무척 한산했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정리해 보니 구걸 하는 사람들 때문에 행인들이 그곳은 피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서울의 목적지에 도착해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중 서울역에서 퇴출된(?) 노숙자들이 다 그곳에 몰려 있는것 같다며 잠시전 있었던 일을 말하자 친구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물었다.
"그래, 보시는 했냐? 호호호"
"보시?...."
보시라... 친구의 말을 듣고는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게 구걸하는것 자체를 번거로와 하고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보시'라는 말을 쓰면서 1000원짜리 한 장 쯤 놓고 오지 그랬냐는 눈빛을 주었다.

 
서울에 갔다가 만난 노숙자_1
서울에 갔다가 만난 노숙자_1

보시라는 말을 쓰는 뉘앙스도 그랬거니와, 늘 겪는 일이지만 친구는 그래도 가끔씩 1000원짜리 한두장은 놓고 다닌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친구의 말을 듣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쁜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그냥 지나치고 나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의 그런 행동이 결국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하기를 "그런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뭐. 그들은 게을러서 스스로 그런 삶을 자초한 것인데 뭐. 내가 한 푼 주었다고 그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라면서 억지로 나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곤 했었던건 아닌가. 

보시는 불교 용어지만 '역보시'라는 말을 생각해 보았다. 즉 누군가에게 모시할 기회를 주는게 역보시라고 생각한다.
보시라고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행위로 생각하고 있고, 그 무엇도 돈이나 밥이나 물건이나 주로 재물 같은 것만을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범위가 훨씬 넓은 것 같다.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보시고,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보시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앙보하는 것도,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도 모두가 보시 아닌가.
우리가 입만 열면 세상이 각박하니 험하니 하지만 어쩌면 그 각박한 사람, 험한 사람도 다 나름대로 순간순간 보시를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곧잘 자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시골에서 보냈는데 학교가 파하면 바로 친구를 따라 십리길이나 되는 친구 집에 따라가 자곤 했다. 집에서는 자주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안 오면 또 친구 집에 놀러갔거니 하고 찾지도 않았다. 
친구 집에 가면 부모님들은 항상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대해주셨고 머리를 곱게 빗어 따 내린 친구 누님은 홍시를 따주며 귀여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얻어먹고 대접 받고 아무 것도 그들에게 보시하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 친구네 식구들이 나에게 보시를 하게 함으로 해서 그 가족분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게 했으니 그것 또한 보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결국에 서울에서 만난 노숙자들은 나에게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어떤 이유조차 따지지 말고 그냥 자비의 마음을 불쑥 내는 것을 배우라고 권유하는 것을 나는 거부했던 것이다. 

사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역보시를 하고 있던 것인데 나는 그걸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어릴적에 시골에 살때는 스님들이 공양을 얻으러 마을 집집마다 돌아 다녔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스님에세 쌀이든 보리든 보시를 했고, 스님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부처님께 봉양함으로써 덕을 얻고 배울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스님은 역보시를 한 것이고, 마을 사람들은 보시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보시 하면서 보시할 기회를 내게 준 노숙자들을 나몰라라 했으니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무엇인가 주려는 마음보다는 공짜로 얻으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고치고 친구의 말처럼 '보시'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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